살짝 비튼 전형성의 매력
<젠틀맨스 가이드>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계급이 명확하던 1900년대에 알게 된 출생의 비밀부터 신분상승에의 열망, 욕망과 사랑 사이의 갈등, 상류층의 위선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물들이 전형적인 것 역시 당연하다. <젠틀맨스 가이드>가 지난 세기의 귀족과 인간의 본성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소설 <이스라엘 랭크-범죄의 자서전>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소설이 인물의 성격을 충실히 그려내고 독특한 살인 기법으로 희극을 만들어냈다면, 뮤지컬은 ‘무대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이 전형성을 살짝 비튼 코미디로 자리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몬티 나바로가 백작이 되기 위해 죽여야만 했던 아홉 명의 다이스퀴스들에 있다. 성별도, 나이도, 성격도 모두 다른 다이스퀴스를 단 한 명의 배우가 맡는다. ‘멀티롤’은 뮤지컬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중심이 되는 인물을 멀티롤로 구현함으로써 만들어내는 호흡은 이 뮤지컬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힘이다. 공간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전시된 갑옷과 박제동물, 초상화들이 만화처럼 움직이는 영상도 관객을 시각적으로 자극한다. 특히 음악은 이 블랙코미디를 더욱 생생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시대와 사회를 표현하듯 음악은 연신 고전적이며 고상하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이스퀴스들의 입을 통해 뱉어지는 가사들은 하나 같이 위선적이고 무지하다. 이 모순의 음악이 귀족을 풍자하는 셈이다. 연신 소프라노로 노래하는 피비나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며 부르는 몬티의 행진곡 풍의 넘버들처럼 <젠틀맨스 가이드>의 음악은 다양한 창법과 장르의 변주만으로도 새로운 코미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낯선 초연의 한계
몬티가 다이스퀴스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높은 곳에서 위력적인 바람이나 아슬아슬한 빙판, 꿀벌이 좋아하는 향도 그중 하나다. 다이스퀴스들 각자의 죄목이 밝혀지며 그들의 죽음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몬티의 살인과정 역시 과장되게 연출되며 코미디를 담당한다. 하지만 문제는 작품이 가진 전체 서사가 일정한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독특한 방식으로 다이스퀴스들은 한 명씩 제거되고, 일이 마무리되면 몬티는 자신의 경험을 일기에 적는다. 이 과정에서 시벨라와 피비를 사이에 둔 몬티의 고뇌도 발견되지만, 이 역시 명확하게 구분지어진 잣대 안에서 되풀이될 뿐이다. 때문에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중요한 것은 빠른 호흡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관객이 이 패턴을 최대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코미디를 가장 코미디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마찬가지로 코미디를 구축하는 데 가장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말맛을 살린 한국어 가사와 1차원적인 웃음 최대한 경계하고 상황에 집중한 코미디로 돌파구를 찾는다. 하지만 낯선 공연의 초연인 만큼 여전히 코미디의 많은 부분이 멀티롤을 담당하는 배우의 표현 능력과 그들의 현재를 담은 몇몇 대사에 의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젠틀맨스 가이드>는 초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코미디로 오랫동안 자리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