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궁>은 의욕으로 충만해 있다. 그럴 수밖에. 2002년의 만화 <궁>과 2006년의 MBC 드라마 <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시끌벅적하게 살아 숨 쉬는 ‘궁’의 세계를 충실히 그려내며 소위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특히 황인뢰 감독의 낙관이 찍힌 드라마는 발랄함과 함께 미적 완성도까지 높이며 잘 만들어진 성장드라마로 한류의 중심에 섰다. 그러니 뮤지컬 <궁>은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조바심을 냈고, 관객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멜로의 바닥 위로 코믹을 얹었고, 화려하고 다양한 댄스를 올렸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영상까지 넣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9월 8일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궁>은 그 과한 조바심 덕분에 극 전체가 흔들리며 위태롭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미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 <그리스>나 <헤어스프레이>와도 같은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를 선보이는 <궁>에는 만화적 상상력과 팬시한 아기자기함이 가득하다. 특히 황태자비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채경(곽선영)의 부담을 그린 ‘약혼지환’ 신은 제법 신선하기까지 하다. 실제 반지가 팔찌로, 거대한 링으로 커지며 그녀를 덮치는 일련의 과정들은 코믹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채경의 부담스러운 내면을 잘 살리는 장면이었다. 황실의 족보를 실제 배우들이 구현하는 장면이나 황태자 이신(김동호)을 향한 주변인물들의 과장된 액션, 그리고 그러한 액션을 부각시키는 효과음 등은 소소하게 귀여움을 담당했다. 하지만 미덕은 거기까지다.
한바탕 실수로 남기기엔 20억이 너무나 커 5
콘셉트에는 충실했지만 뮤지컬 <궁>은 ‘뮤지컬’로서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보통 여고생의 성장과 사랑”을 그릴 예정이었지만,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아이들의 고통과 성장은 그저 흘러가버릴 뿐이었다. 뮤지컬은 다시보기가 가능한 드라마나 만화와는 다르다. 한번 흘러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장르의 특성상 뮤지컬은 신마다 목적성이 뚜렷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 종종 극단적 감정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궁>에서 인물의 감정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는 건 악역으로 설정된 혜정궁(이채경)뿐이다.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 혜정궁의 솔로는 좌우로 불기둥이 서고 리프트에 올라타 나름의 위엄도 뽐내며 명확한 제 몫을 해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신과 채경에겐 아무런 서포트도 없다. 그저 단조로운 조명과 공간을 설명하는 것 외에 그 어떤 효과도 발현해내지 못하는 무대세트만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이 허전함이 그들의 고독을 설명하는 것이란 말인가. 장치가 많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새장 속 인생”을 고뇌한다면,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직접적인 대사와 노래뿐만이 아닌 강한 압박을 주는 분위기의 조성 역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다음 신을 위한 준비운동이 더딘 만큼 신과 신 사이의 격차는 자꾸만 벌어져 극은 에피소드 나열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궁>의 많은 부분은 스토리 전개와 인물의 감정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닌 그저 볼거리의 수단 수준으로 전락해버려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동적인 뮤지컬을 위해 미술학도에서 힙합걸이 된 채경이나, 발레리나에서 라틴 댄서가 된 효린(서현진)은 극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그 중 ‘소년소녀가장돕기 자선행사’는 쇼를 위한 쇼에 불과했다. 브레이크 타임은 “황태자 저하께서 어떻게 백성 앞에서 머리를 박겠어”라는 대사를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되었고, 결과적으로 극중 황태자 자질 논란을 가져오는 큰 사건이지만 그 논란 역시 지극히 부자연스러울 뿐이다. 지금의 <궁>에는 응집력이 없다. 아이돌만 모셔온다고 뮤지컬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와 드라마처럼 한류를 목표에 두고 있다면, 선택과 집중으로 다시 시작할 때다. 뮤지컬 <궁>은 10월 24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