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비딕>, 배우 윤한 (텐아시아)

유독 수식어를 달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윤한이 그렇다. 팝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이고, 뮤지컬까지 해서만은 아니다. 달달한 생크림 같은 목소리로 ‘You're my Christmas eve’(‘Marry Me’)라 고백하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연신 수줍어하고, 결국엔 “사실 저 꽉 막혔어요”라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한은 다양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콜라주를 닮았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결석도, 일탈도 해본 적 없는” 소년이 어느 날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던 김동률에게 매혹되어 버클리 음대에 갔다는 이야기는 콜라주의 가장 커다란 부분이다. 하지만 이 조각 안에는 작은 조각이 하나 더 있다. “남들 수능 공부할 때 5개월간 체계적으로 피아노, 화성학, 청음에 영어회화, 토플까지 공부했어요.” 재능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음악을 “한 번 마음먹으면 작정하고 덤비는 성격”으로 돌파하고 입학과 졸업, 귀국과 입대, 대학원 진학까지 쉬지 않고 체계적으로 이어간 지난 10년의 세월은 ‘뮤지션=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편견을 훌쩍 뛰어넘으며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두리번거리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왔던 길은 결국 성실함을 자신감이라는 단어로 치환시켜준다. “칭찬이나 욕을 들어도 크게 신경 안 쓴다”거나 모두가 한껏 들뜨는 뮤지컬의 마지막 공연에서조차 “나도 욕심나지만 나까지 너무 그렇게 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첫 공연처럼 했다”는 이야기 모두 스스로를 향한 굳건한 믿음의 돌림노래인 셈이다. 그리고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흐르는 길은 역시 ‘음악’이다. “전에도 표정이나 몸짓이 음악의 일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모비딕>을 하면서 표현에 좀 더 솔직해졌어요. 예전이 10이었다면 지금은 100 정도? 25, 26일에 하는 단독콘서트는 피아노와 목소리로만 어쿠스틱하게 할 건데,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오롯이 자신의 노래로만 채울 콘서트를 앞에 두고 그 순간 윤한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하지만 그에게 진지함이 전부라고 단정 짓지 말자. 앞에 놓인 맥주를 연신 들이켜며 와하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니 말이다. “지금의 고민은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싶은데 일이 별로 없다는 거?” 이 남자의 콜라주, 예측할 수 없어 더욱 흥미롭다.
My name is 윤한. 본명은 전윤한.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빛나는 날개’라는 뜻이다.
형 때문에 다른 이름이 될 뻔했다. 3살 터울의 형 이름이 윤상인데, 할아버지가 형 태어날 때 용한 곳에서 이름을 2개 받아오셨단다. 첫 번째가 법룡, 두 번째가 윤상. 으하하하. 형이 법룡이었으면 난 청룡이 됐을지도 모른다.
올해로 서른이 됐는데, 처음 만나 인사할 때 “스물아홉입니다” 하다가 “서른입니다”라고 하니까 왠지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30대가 되면 체력적인 부분에서 힘들어하던데 오히려 난 <모비딕>을 하면서 더 좋아졌다. 뮤지컬 하면서 담배를 끊었거든. 술 마실 시간도 없고,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하니까 힘들어서 연습 끝나고 집에 오면 매일 스테이크 한 덩어리랑 대하 2마리를 꼭 먹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수학여행 가면 항상 장기자랑에 나가던 학생이었다. 중1 수학여행 때는 노래를 하고 싶어서 무반주로 패닉의 ‘달팽이’를 꿋꿋히 2절까지 부르기도 했었다. 다른 애들은 춤추고 그랬었는데. 아하하하하.
보수적인 집에서 음악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던 건 가수나 연예인을 하겠다고 한 게 아니고 음악을 한다고 해서이지 않을까. 대신 이왕 할 거면 세계 최고의 학교에 가길 바라셨고, 갔다 와서도 석·박사 학위를 따길 바라셔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부모님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게 잘 맞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원까지 결석한 적이 거의 없다. 수업을 빠지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다음 시간에 가면 프린트물도 다시 받아야 되고 학교 안 가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 지금 박사 마지막 학기인데 지금까지 계속 개근하다가 <모비딕> 때문에 몇 번 빠져서 가슴이 아프다. (웃음) 거의 30년 만의 결석이랄까. 이것만은 정말 깨고 싶지 않았는데!
개근 덕분에 대학원 석·박사 학점이 모두 4.0 만점에 4.0이다. 으하하하하. 전 과목 올 A+. 작년에 대학원 통틀어 딱 한 명 주는 전액장학금을 받았는데, 손쉽게 받았어. 하하하하하. 그렇다고 내가 4.0 받으려고 밤새 공부하고 그러진 않았다. 대학원은 결석이 많기 때문에 수업 딱딱딱 들어가고, 리포트 내라는 거 내고 시키는 거 하면 그냥 100점 준다. (웃음)
사실 공부가 제일 쉽다. 그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진짜 그렇다. 데드라인도 배우는 것도 다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연주 이런 건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난 절대음감도 아니고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것도 아니고 자다가 악상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유학을 가보니 재능 있는 사람들, 천재는 따로 있더라. (웃음)
흐트러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술 먹고 집에 들어와도 할 건 다 하고 잔다. 해야 되는 건 해야 된다.
처음 <모비딕>을 시작할 때는 많이 두려웠다. 다들 연기를 경험해봤던 사람들 안에서 혼자 튈 것 같았다. 발연기도 튀니까. 그러다가 연기를 하기 보다는 그냥 나를 보여줘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좀 편해졌고, 그때부터 능청스럽게 잘 한다는 얘기도 듣기 시작했다.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만 (황)건이 형이랑 (지)현준이 형은 앞으로 연기해봐도 좋지 않을까? 라고 얘기도 해주더라. 나 연기 좀 잘하나? 하하하하하
<모비딕>에 출연한 배우들이 대부분 남자라 연습실에서 팔굽혀펴기, 턱걸이 같은 걸 자주 했다. 내기도 자주 했는데 난 늘 이긴다. (웃음)
여행적금을 들 정도로 여행을 굉장히 좋아한다. 대신 혼자는 절대 안 간다. 혼자 한 번 갔던 적이 있는데 하루는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 너무 재미가 없더라. 너무 지루하고, 밥도 혼자 먹어야 되고. 난 사람 많은 게 좋다.
최근에 갔던 여행지 중에는 체코가 정말 좋았는데, 거긴 여자친구랑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른들이랑 가서 좀 안타까웠었다. 으하하.
<모비딕>을 하면서 만든 세 가지 것들
“이스마엘의 율동은 다 내가 넣은거다”
“뮤지컬을 하기로 한 이후에 뮤지컬을 정말 많이 보러 다녔다. 발레도 보고. 특히 뮤지컬은 안무가 많은 장르라서 그걸 생각하고 <모비딕>에 갔는데, 안무도 거의 없고 거기다 난 독백만 많아서 처음엔 그런 게 좀 불만이었다. 피아노 치다가 일어나서 독백하고, 기어 다니다가 독백하고. (웃음) 기왕 할 거면 춤도 좀 추고 싶었거든. 잘 추거나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뮤지컬이니까. 플라스크랑 스텁이 고래잡이 오리엔테이션할 때 이스마엘이랑 퀴퀘그는 뒤에 그냥 서있는데, 참여를 해야지 왜 서있냐 막 그랬다. (웃음) ‘술잔을 들어라’도 초연 때는 아예 안무가 없었다. 이스마엘이 하는 율동은 다 내가 넣은 거다. 나도 출래요! 중간에 이스마엘 솔로 댄스 넣어야 돼요! 막 이러면서. (웃음) (신)지호는 많이 힘들어했을 것 같긴 한데 난 춤추는 거 되게 좋았다.”
“<모비딕>을 하던 중 ‘내 친구’라는 곡을 만들었다”
“마지막 공연 때 나도 애드리브를 하고 싶어서 퀴퀘그에게 주는 ‘내 친구’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배틀하는 장면에서 쓰고 싶었는데, 이게 내 공연이 아니고 <모비딕>이라는 작품 안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결국 마지막 공연 때도 못 하고 접었었다. 그걸 이번 단독콘서트에서 KoN 형이 게스트로 나올 때 해볼까 한다. 퀴퀘그는 정말 멋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만약에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어서 다른 캐릭터를 할 수 있다면 진짜 퀴퀘그를 해보고 싶다. 특히 의상이랑 분장, 움직임이 너무 맘에 들었다. 몸에 시커멓게 분장하고 王자도 그리고. 나도 나도! (웃음) 나도 그러고 나가면 좀 괜찮을 것 같은데. 하하하하”
“두목회라는 계를 조직했다”
“원래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모비딕>을 하면서 내가 음악만 계속 했다면 평생 못 만났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도움도 너무 많이 받았고. 그래서 끝나고 밥 한 번 사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근데 사람이 많으니까 다 살 순 없고. (웃음) 콘트라베이스 했던 (황)정규 형이랑, 트럼펫 불던 (유)승철이, 그리고 <모비딕> 제작 PD, 나 이렇게 네 명이서 밥 먹고 놀았다. 그 후에 이 멤버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두목회. 매달 두 번째 목요일에 만나는. (웃음)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샀고, 6월부터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이미 날짜도 정해졌다. 두 번째 목요일이니까. 으하하하하. 넷이 다 술을 좋아해서 만나면 맥주 마시고,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고 그러는 거지. 물론 건설적인 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