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오늘, Like
국내에 소개되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대부분은 그냥 믿고 봐도 된다. 현지에서 몇십년의 작품 개발과 다양한 공연을 거쳐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 많고,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는 작품을 국내에 들여오기 때문이다. 2005년 초연 이후 4번째 재공연 중인 <아이다> 역시 친숙한 디즈니풍의 음악, 다채로운 조명으로 구현된 미장센, 강인하면서도 자유로운 안무가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주제와 어울려 국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레플리카 프로덕션의 재공연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지만, “증오의 시대에 살던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로 소개되던 <아이다>는 2016년 12월의 대한민국에서 공연되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올해의 관객은 백성을 외면하지 않는 지도자, 아이다의 각성에 열광한다. “바라는 것은 당신 자신의 의무, 지혜, 용기 그것뿐”(‘Dance of the robe’)이라는 누비아인들의 목소리에 “절망한 백성들 얼굴 보여. 내 나라와 민족도 겁쟁일 원하지 않아. 지금 선택해야 할 것은 내 나라와 내 민족뿐”(‘Easy as life’)이라 답하는 아이다는 누구나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상을 제시한다. 매일매일 업데이트 되는 리더의 무능함을 확인하는 나라에서라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비로소 <아이다>라는 작품과 한국이 맞닿는 느낌.
갈피를 잃은 라다메스, Dislike
작품 안에서 아이다의 리더로서의 각성과 사랑이 유기적으로 맞물리고는 있지만,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3:7 정도가 될 것이다. 작품의 서사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이들의 행복과 시련을 다루고, 여전히 작품의 절정은 반역죄로 체포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한 공간에서 사망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의 재공연에서는 그들의 사랑이 다소 빛을 잃는다. 그것은 단지 <아이다>가 이상적인 리더상을 그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다-라다메스-암네리스가 만들어내는 균형감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아이다는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라다메스를 향해 “당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싫으면 스스로 바꾸세요. 당신 자신이 당신의 주인이에요”라고 당당하기 외치며 자신의 매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보여지는 게 전부였던 암네리스 역시 자신을 치장하던 것들의 출처를 확인한 이상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장한다. <아이다>는 두 인물이 여성이자 한 나라의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며 시대가 요구하는 독립적인 여성캐릭터로의 업데이트를 이뤄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만큼 아이다의 결이 풍부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성의 변화에 비해 라다메스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강압적인 말투로 모두에게 명령을 하고, 자신의 사랑과 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도대체 왜 사랑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