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러빗 부인, Like
억울한 누명으로 15년 간 투옥되어 아내를 빼앗기고 딸까지 잃은 벤자민 바커에게 필요한 것은 복수뿐이다. 그러나 작품이 스위니 토드의 복수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도리어 도드라지는 것은 그를 돕는 러빗 부인의 존재다. 그는 토드에게 생활이든 복수든 미래를 위한 도구를 준비해주고, 복수심에 불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토드를 진정시킨다. 돈을 위해서라면 죄책감 없이 인육파이를 만들면서 고아인 토비아스를 돌보고 집안을 꽃으로 장식하거나 해변에서의 휴식 등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여자도 러빗 부인이다. 적절히 밀고 당기며 토드를 움직이고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는 면에서 러빗 부인은 ‘복수’를 제외한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두지 않는 토드에 비해 훨씬 다층적이고 흥미롭다. 특히 이번 시즌은 전반적인 배우들의 에이지가 낮아지면서, 자칫 과하게 느껴지던 러빗 부인의 오지랖 넓은 성격이 중화되며 균형감을 찾았다. 서사의 진행부터 인물의 성격, 상황 묘사, 연기 디렉션까지 포함되어 있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 중에서도 러빗 부인의 곡들은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데, 옥주현은 탄탄한 기본기와 다양한 테크닉으로 연기의 70% 가량이 음악에서부터 시작되는 그의 곡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옥주현이 노래로 손드하임의 의도를 전달한다면, 다층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며 코미디에도 능한 전미도는 손드하임이 추구했던 블랙코미디적인 면을 부각한다. 분명한 의도 안에서 빈틈없이 구현된 캐릭터는 배우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듯 다른 두 배우를 통해 관객은 손드하임이 <스위니 토드>로 구현하고자 했던 다양한 의도를 느끼게 될 것이다.
제2의 <지킬 앤 하이드>?, Dislike
팀 버튼에 의해 제작된 동명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연쇄살인이나 인육파이 같은 소재는 극을 어둡고 그로테스크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 초연 이후 10년 만에 부활한 이번 <스위니 토드>는 다양한 대중적 접근으로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힌다. 실력과 인지도를 갖춘 조승우, 양준모, 옥주현, 전미도를 캐스팅했고, 프로그램북에는 드물게도 전곡 가사를 실어 난해하고 소리가 중첩되어 잘 들리지 않는 손드하임 곡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심플하게 재단된 3단 세트는 산업혁명 시절 런던의 계급사회를 보여줌과 동시에 다면 영상, 다양하게 디자인 된 조명을 이용해 구체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만담에 버금가는 배우들의 호흡도 좋다. 연출을 맡은 에릭 셰퍼가 각각의 캐릭터와 토드의 복수에 집중하면서 관객의 몰입도도 더욱 높아졌다. 이번 프로덕션은 한국에서 성공 가능성이 낮은 마니악한 대극장 뮤지컬을 되살려 다음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심판의 형태를 띤 연쇄 살인과 내려다보는 구도로 제작된 세트, 과격하게 내뱉는 토드의 톤 등 상당 부분에서 오디뮤지컬의 대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논 레플리카로 스테디셀러가 된 <지킬 앤 하이드>를 생각해 봤을 때 익숙함과 친절함으로 제작된 <스위니 토드>는 성공을 위한 출발선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한 함의를 담은 원작의 미덕이 사라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