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사로잡는 미장센, Like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뮤지컬을 꼽으라면,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에서 제작한 작품 다수가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EMK의 최신작 <웃는 남자>는 2010년 <모차르트!> 이후 논레플리카 방식을 고수해온 EMK의 제작 노하우와 자본이 집약된 창작뮤지컬이다. 극이 시작되면 거대한 샹들리에나 그윈플렌의 입모양과 터널에서 착안한 독특한 구조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규모로 압도하고 화려함으로 무장한 세트는 기존의 EMK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세심한 디테일과 각 분야의 정교한 협업으로 무대의 한계를 무대만의 매력으로 치환해내는 데 성공한다. 주름진 패브릭과 조명, 영상이 만나 빛을 반사하는 영롱한 바다를 구현해내고, 낡고 기이해 보이는 유랑극단에는 수십 개의 따스한 조명이 더해져 극의 정서를 돕는다. 각 장면은 하나의 엽서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미장센을 선보인다. 의상 역시 고증이나 화려함에 치우치기보다는, 소재와 질감으로 신분과 캐릭터의 성격을 투영하는 것에 집중한다. 공간을 채우는 작은 소품 하나에서도 인물의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170억 원이라는 제작비의 행방을 관객이 눈으로 확인하는 셈이다. 작품의 완성에 있어 자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번에 보여주는 뮤지컬.
아직은 부족한 다채로운 해석력, Dislike
<웃는 남자>에서 도드라지는 것 중 또 하나는 편곡이다. 대중을 사로잡는 데는 탁월한 재능을 보이지만 자기복제 성향이 강한 프랭크 와일드 혼의 넘버는 다채로운 편곡 덕에 힘을 얻는다. 다양한 악기 편성과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 과감한 편곡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바이올린 솔로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더욱 감성적으로 담아낸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가 작품 속 해설자처럼 무대 한켠에 등장함으로써 관객이 최대한 감정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대극장 뮤지컬의 한계로 지적되어 오던 개연성을 상쇄하고자하는 노력이다. 우스꽝스러운 여왕과 상원의원, 갖지 못하는 것을 욕망하는 조시아나 공작부인을 통해 기득권을 조롱하는 것도, 정반대의 계급사회 양쪽을 오가는 그윈플렌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도 모두 음악이다. 30곡이 넘는 넘버는 방대한 원작이 가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담고자 노력한다. 특히 그윈플렌의 경우 인물이 겪는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크고, 그에 따르는 감정의 결도 다채롭게 뻗어나간다. 결국 곡 해석력은 개연성의 가장 큰 열쇠가 된다. 하지만 현재의 <웃는 남자>는 초연의 특성상 이 다채로움을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박효신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는 넘버는 다른 캐스트에게는 곡 소화 자체가 버거워 보이기도 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