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라는 케미스트리, Like
‘남고 동창회가 이런 분위기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래고래>는 종종 시끄럽고 산만하다. 도보 여행인데 워커 신고 왔다고 옥신각신하거나, 너한테만큼은 지지않겠다는 일념 하에 지지부진한 현실을 한껏 부풀려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름보다는 “새끼”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기도 한다. 드러누워 땡깡을 부리고 눈치 없이 행동하다 더 큰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물론이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티격태격하다가도 막내에게 잡일을 떠맡길 때는 금세 죽이 척척 맞고, 술 한 잔에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서는 아직 철들지 않은 가장 보통의 네 남자가 보인다.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가 노래방에서 ‘발걸음’을 열창할 것만 같은 이들에게서 세련된 멋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촌스러워 보일 정도로 꾸밈없는 네 남자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밴드라는 설정 안에서 끈끈한 케미스트리로 제 몫을 해낸다. 배우들은 마치 자신의 지나간 한 시절을 그려낸 듯 자연스럽고, 몽니의 곡들은 훨씬 더 에너제틱하게 편곡되어 작품이 가지는 전형적인 서사를 견인한다. 특히 실제 관객을 버스킹과 콘서트 현장의 관객으로 설정하고 공연 라이브 영상을 무대에 펼쳐냄으로써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이 여행의 동행자로 만든다. 이러한 형식의 극에서 커튼콜은 이 모든 것은 완성하는 ‘끝판왕’으로 자리한다. <고래고래>가 콘서트 형 뮤지컬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라는 측면에서 관객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시대착오적 연대기, Dislike
“뭐 흔한 얘기네요.” 1번 국도의 횡단여행을 함께 하게 된 <7시 내 고향> PD 혜경은 밴드의 흥망성쇠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지방의 고만고만한 남자애들이 서울에서 온 전학생을 만나 자신들의 꿈을 키워간다는 이야기나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는 남과 여, 음악을 그만둔 후 이어진 5년간의 방황, 완전체의 재결합과 그들의 마지막 무대까지 <고래고래>는 익숙하다 못해 전형적인 서사로 가득하다. 공부보다는 음악이 하고 싶은 전교 1등,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허세로 감추는 츤데레, 이별의 상처로 말과 음악을 포기한 아웃사이더, 밴드 내 궂은일은 혼자 다 하는 막내라는 캐릭터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그림이다. 여기에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는 거여”, “맘에 드네.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기타 잡는 데가 다 무대지” 같은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와 1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버스킹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연대기”가 완성된다. 하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관찰되는 이러한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은 극적인 무언가가 없이도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내는 의외의 울림이 있다. 따라서 <고래고래>를 완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일단 ‘꿈을 쫓는 록밴드의 여행’이라는 설정에 익숙해지는 것이 먼저다. 첫 번째 미션에 성공했다면 어느새 영민의 대사처럼 “촌스럽고 좋네”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