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삶에 대한 은유 (스테이지톡)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고 가까워지고 이별하는 일반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2015년 트라이아웃을 시작으로 2020년 세 번째 시즌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상은 지루하고 상처투성이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자신과 타인, 사회와 관계 맺으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삶은 어쩌면 해피엔딩일 거라고. <어쩌면 해피엔딩>이 효용과 기능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LP플레이어에서 들리는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따스한지, 종이컵 전화기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손으로 만져지는 종이 잡지와 지도에는 어떤 충만함이, 도시에서 들리는 빗소리와 깊은 숲 속의 반딧불에는 아련함이 있다. 소품과 공간으로부터 비롯된 미묘한 감정이 어쿠스틱한 선율과 구체적이고 섬세한 가사로 그려진다.
누군가를 돕는, 철저히 기능에 맞춰 제작된 ‘헬퍼봇’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기술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낡은 것은 쉽게 버려진다. 타인의 삶을 위해서만 존재했던 이들은 더 이상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평온한 외로움”을 선택한다. 뮤지컬은 일정한 루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오래된 습관을 버리고 감정을 다양하게 느끼며 끝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과정을 담담히 따라간다. 관객은 이들의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상처를 마주하는 용기를, 한계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발견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사랑이야기를 넘어 삶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이유다. 5년간 공연을 이어오며 작품의 메시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슬프지만 따뜻하고 흥겨운 선율은 현악기 편성으로 매력이 배가되었고, 나무의 질감을 살린 무대도 작품의 아날로그한 정서를 극대화했다. 얼핏 독특해 보이는 인물의 성격과 설정도 배우들의 연기로 보편성을 얻었다. 세 번째 시즌 역시 그동안의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번 공연에서는 다양한 영상이 작품을 좀 더 또렷하게 한다. 영상은 그동안의 프로덕션에서도 사용되었으나, 공간을 단순하게 그려내는 데 그쳤다. 심도와 원근감을 살려낸 이번 시즌의 영상은 빗소리, 자동차소음 같은 현장감이 느껴지는 음향과 조명의 힘이 더해져 아주 구체적인 공간을 구현해내는 데 성공한다. 물론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은 줄어들었다. 대신 디테일하게 설정된 영상의 공간을 통해 작품은 공연예술이 가진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에 관객이 두 헬퍼봇의 감정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도록 돕는다. 어쩌면 감정 자체가 전부인 작품에서 무대 위 인물과 관객이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상상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같이 자동차 여행을 하고, 반딧불을 함께 보는 것처럼. <어쩌면 해피엔딩>은 아주 예민하되 편안하고, 느린 듯 경쾌하다. 이 속도와 방향은 빠르게만 달려가는 우리를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스테이셀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