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록키호러쇼>, 실종된 오리지널리티를 찾아서 (텐아시아)

영화로 더욱 친숙한 <록키호러쇼>(Rocky Horror Show)는 사실 1973년 영국의 한 작은 소극장에서 시작된 뮤지컬이다. <록키호러쇼>는 한없이 소극적이고 지나치게 서로에 대한 배려심으로 충만한 브래드와 자넷 커플이 기괴한 프랑큰 퍼터 박사의 성에서 보낸 한여름 밤의 꿈을 그린다. 60석에서 시작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드디어 입성하는 순간 영화 <록키호러픽쳐쇼>가 제작되고 대표적 B급 컬트물로서 전 세계적인 사랑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되고 2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국내 관객을 만날 수 있을 만큼 <록키호러쇼>는 파괴적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바이섹슈얼, 외계인, 인조인간. 강렬한 록사운드와 아찔한 가터벨트 차림의 성적에너지가 모르핀처럼 흐르는 동안 순진무구한 관객들은 브래드-자넷 커플과 함께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판타지를 끄집어낸다. 상식과 상상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 설정들이 난무하는 극에서 관객이 해야 할 일은 그저 평가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두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난 8월 27일부터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을 시작한 호주팀의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이 무색하게 밋밋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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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호러쇼>는 이미 제목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록, 호러, 그리고 쇼. 하지만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이는 해외투어팀의 공연에는 록도 호러도 쇼도 없다. 록과 성적에너지의 정점에 서서 극을 이끌어가야하는 인물 프랑큰 퍼터 박사 역을 맡은 후안 잭슨은 안타깝게도 록에서 가장 먼 곳에 서있다. <미스 사이공>과 <지킬 앤 하이드> 급의 대극장 공연을 주로 했던 그에게선 록킹한 발성과 퍼포먼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탄탄하고 매끈한 근육이 그를 돋보이게 만들지만, 후안 잭슨의 프랑큰 퍼터는 억지로 여자 옷을 입은 왕자님과도 같았다. 단순히 배우들의 역량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번 공연은 배우들 간의 에너지가 분산되어 있고, 느린 템포와 작은 볼륨의 록사운드 덕분에 전반적으로 루즈하다. 또한 소통이 가장 중요한 컬트물임에도 불구하고 800석 규모의 중극장과 자막은 오히려 관객의 집중도를 흩트려 놓는다. 이처럼 분산되어버린 관객과 배우의 에너지는 결과적으로 가장 쇼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타임워프’와 ‘플로어쇼’마저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에 소개되는 일련의 내한공연들은 오히려 한국뮤지컬의 저력을 알리기 위해 등장하는 ‘X맨’ 같다. <록키호러쇼>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2009년에 재공연되었던 한국판 <록키호러쇼>가 더 에로틱하고 재기발랄했다. 고막이 먹먹할 정도로 록사운드가 가득했고, 프랑큰 퍼터는 그야말로 섹시하고 경박한 교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한공연은 공연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에로틱하지도 강렬하지도 않다. 쇼는 사라졌고, 록음악은 전혀 신이 나지 않는다. 원작자 리처드 오브라이언의 참여로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오리지널의 감성이 사라진 <록키호러쇼>에게는 마냥 과분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