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창작뮤지컬에는 일련의 흐름이 있다. 지난 5년간 무대를 지킨 것은 천재 아티스트들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부터 <라흐마니노프>, <랭보>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국적도 성향도 다른, 하지만 들으면 누군지 바로 아는 존재들 말이다. 이들에게는 상처와 고뇌 끝에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러나 패턴은 금세 익숙해졌고, 천재예술가의 삶에서 평범한 우리와의 접점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그 틈을 비집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들이 등장했다. 이전의 흐름과는 달리, <세종 1446>부터 <난설>, <외쳐 조선> 같은 뮤지컬들은 다양해진 성별과 계급으로 주제와 인물의 범위를 넓히며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매체를 불문하고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기록은 창작욕을 불러일으킨다. <경종수정실록>은 그중에서도 왕의 운명을 타고 났지만 노론과 소론이라는 당쟁에 희생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해 심리극을 시도한다. 경종과 연잉군의 서로 다른 성향은 듀엣으로 풀고, 그들 곁의 홍수찬은 관찰자와 당사자를 오가며 트라이앵글을 만들어낸다.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그늘에서 30년을 보낸 후 임금이 되어서도 제 뜻을 맘껏 펴내지 못하는 경종, 왕이 되지 못할 운명 안에서 번뇌하는 연잉군, 역모로 몰린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홍수찬. 작품은 세 인물을 지키려는 자, 빼앗으려는 자, 기록하는 자라는 또렷한 구조로 설정한 후 이들의 입체적인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려 노력한다.
그러나 뮤지컬의 문제는 위치상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목표와 욕망이 단조롭게 처리된다는 것에 있다. <경종수정실록>의 서사는 외부 세력의 영향력에 흔들리는 세 인물의 리액션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노론의 행동들은 왕좌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하지만, 대부분이 대사로 처리된다. 말의 힘은 생각보다 약하고 희박해진 존재감은 결국 인물이 처한 환경을 충실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인물의 정서와 상황에 동화되지 못하니 이후에 진행되는 인물들의 변화와 결론에 물음표가 붙고, 인물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담아내는 음악 역시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작품의 80%가 불안과 초조의 정서로 구현된 만큼 음악은 주로 발산하는 형태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주는 피로감도 높다. 음악을 제외한 다른 요소들이 서사에 힘을 싣지 못함으로써,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환경과 인물간의 관계는 고스란히 배우의 몫으로 돌아간다. <경종수정실록>의 형태가 소극장 3인극으로 결정된 순간, 이 모든 문제는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태의 한계를 언급하기 이전에 작품에는 근본적인 고민이 비어있다. 왜 지금 경종이며, 왜 굳이 뮤지컬인가. 지금의 <경종수정실록>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