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정재일 작곡가 (국립극장 월간지 <미르>)

모두가 정재일을 원한다. 가요, 클래식, 전통음악, 연극, 뮤지컬, 무용, 미술이라는 ‘예술’이라 칭해지는 많은 장르에서 그를 원한다.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도 아이돌부터 일흔의 대가까지 다양하다. 그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은 물론, 대중과의 가교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2016년 역시, 앙상블 시나위와 극단 골목길의 <소월산천>, 박효신의 새 앨범 <I am A Dreamer>, 국립현대미술관의 <보이드 전>을 거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 도착했다.
국립극장에서 오랫동안 프로포즈를 한 것으로 안다. 첫 창극작업인데 어떤 부분에 끌렸나.
안숙선 선생님 같은 인간 국보를 통해 한 수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그리고 연극 <맥베스>처럼 처음부터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비극적인 작품에 많이 끌리는데, 이 작품 역시 절망에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난다. 어마어마한 비극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장 폴 사르트르는 에우리피데스의 원전을 프랑스의 베트남 침공에 빗대서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뺏고자 하는 유럽의 야만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야기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특히 ‘판소리의 원형을 보여주자’는 옹켕센 연출가의 노선 역시 내가 할 일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관객 입장으로 크게 동의했다.
원형이라는 노선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매우 위험하다. 작곡이라는 개념이 없는 전통음악에 작곡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본적으로 전통음악은 연주자와 성악가의 음악이다. 그들이 했던 산조나 판소리들은 모두 즉흥에서 나온 거니까. 그래서 전통음악에서 음악감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작곡가로서 어설프게 참여하지 말자는 거다. 판을 잘 깔고, 사이를 조율하고 잘 연결해주고 딱 빠지면 거기서 알아서 이루어진다. 이번에 안숙선 선생님이 작창한 소리는 새로운 것임에도 마치 다섯 바탕을 듣는 것처럼 몇백 년 있어온 소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창극보다는 훨씬 어려울 텐데 그래도 이게 어떤 다른 길을 제시하고 다른 아름다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캐릭터마다 악기를 매칭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캐릭터와 어떤 악기가 만나는가.
트로이 여인들의 장이자 남자들이 다 사라진 상황에서 실질적인 왕과 같은 헤큐바에게는 거문고를 붙였다. 거문고라는 악기가 덜 화려해서 잘 모르지만, 어마어마하게 강력하고 웅장한 소리를 낸다. 특히 해금이나 아쟁 같은 악기는 듣기만 해도 슬픈 게 있는데 거문고는 악기에서 표현하는 감정이 특별히 없어서 선택했다. 자식을 잃은 안드로메다에게는 아쟁과 해금을, 카산드라에게는 대금을 쓸 예정이다. 옹켕센 연출이 대금소리를 불같다고 표현했는데 카산드라가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다. 스파르타의 장군 메넬라우스는 익살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대취타라는 전통 군악을 이용해 퍼커시브한 음악을 하려고 한다. 문제는 헬레네인데, 이번에 이 캐릭터를 남자가 한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무성의 존재로 헬레네를 그릴 예정인데 갑자기 연출이 그랜드 피아노를 꺼내오겠다고 해서, 네? 뭐라고요? 이런 상태다. (웃음) 원래는 트로이인도 스파르타인도 아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위치를 표현하기에 화성이 들어가는 악기가 좋겠다 싶어서 가야금을 생각했었다. 이 결합이 좋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마 음악가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일 거다. 연출의 개념적인 것과 음악가들의 음악적인 것의 충돌이 단연코 가장 어렵다. 그래도 양쪽에 다 동의하기 때문에 잘 이을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장르에서 음악을 하는 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때문인가.
예술가인 나보다 예술소비자로서의 나를 더 좋아한다. 무용을 알게 되면서 이 세상에 음악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고, 그 이후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것 같다. 사실 이건 음악 하는 사람의 특권이기도 하다. 음악가는 모든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예술가니까. 때때로 내가 가진 재주를 왜 음악에 더 쏟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음악에 집중하는 것과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는 것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 중이다. 결국 모든 게 다 밸런스 문제인데 앞으로는 좀 더 음악적으로 갈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는 정재일 덕분에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있는데, 어떤 아쉬움 때문에 음악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것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의 농도가 짙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 같이 작업 하는 사람들 많다. 지금 생각나는 가장 성공적인 예가 류이치 사카모토일 텐데 그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나는 그가 꽤 훌륭하게 농도 짙은 많은 것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내 음악의 농도를 견고하게 지키고 그걸 더 짙게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박)효신이 형이랑도 작업하면서 침잠할 수 있는 꽤 긴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난 그게 바람직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환경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무게감 있는 걸 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본인을 압도하는 예술에 영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예술은 그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생각하나.
택도 없다. 한참 연극과 무용을 보러 다닐 때는 내가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로도 진화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었다. 어렸으니까. 피나 바우쉬가 도시를 테마로 한 작품이 열 개가 넘는데, 2011년 런던 올림픽 때 그 작품 천제를 초청해서 공연을 했었다. 한 달 반 동안 그 프로젝트를 보고 지냈는데 내 몫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나는 재주가 보통 사람들보다는 월등히 많고 핵심을 캐치하는 능력도 있어서 그런 예술을 언젠가는 하고 싶지만, 내 깜냥이 되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그냥 재주로 하는 게 내 몫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그건 너무 안타까울 것 같다.
그렇다면 아티스트이자 서른다섯의 정재일로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예술적으로 보자면 작품을 제대로 잘하고 싶은 게 있고, 아주 그냥 개념적으로 보자면 누군가 나를 봤을 때 땅에 발을 착 붙이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 남성으로서도, 예술가로서도, 누군가의 동료로서도, 누군가의 가족으로서도. 그동안은 부유하고, 기어가고, 엎어져있었다. 지금도 안 그런 것은 아닌데 앞으로는 더 굳건히 서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