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사랑의 비극적 서사, Like
많은 미스터리 추리극은 논리와 심리의 절묘한 균형 안에서 진행된다. 알리바이의 허점을 찾아내 범행의 과정을 밝혀내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와 관찰, 판단에 의해서다. 하지만 동기만큼은 철저히 인간의 관계와 심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용의자 X의 헌신>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은 살인의 은폐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 용의자 이시가미를 통해 논리적 추론과 비논리적인 사랑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논리와 비논리의 합을 이뤄내는 것은 수학이다. 단순하고 깔끔한 답을 찾는 이시가미의 수학은 트릭이 되어 다양한 방향으로 펼쳐진다. 특히 수학을 향한 그의 접근은 캐릭터 형성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하나에 몰두하는 이시가미의 성격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위태로운 삶을 우연히 잡아준 야스코를 향한 사랑과 살인이라는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수학이라는 논리를 통해 사랑이라는 비논리적인 감정의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이 ‘추리극의 외피를 두른 멜로극’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비극의 매력이 원작의 매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음악, Dislike
원작이 있는 작품이 원작의 정수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용을 담는 그릇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다. 책은 추리의 과정과 인물의 감정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영화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무대예술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파생되는 서사와 감정의 한계를 무대만의 언어로 채워야만 한다. 뮤지컬이라면 첫 번째는 당연히 음악이다. 하지만 뮤지컬 <용의자 X의 헌신>의 음악은 작품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목적 없이 방황한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은 지극히 설명적인 가사다. 굳이 음악이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가사가 허공을 맴돈다. 순식간에 송모먼트가 무너지는 것도 당연하다. 설명적이고 문어체에 가까운 가사는 인물의 감정을 객석까지 전달하는 것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불안이라는 정서를 극 전반에 채우기 위해 잦은 불협화음을 쓰지만, 그 효과는 미비하다. 유일하게 이야기가 통하는 사이지만 문제를 향한 접근이 서로 다른 이시가미와 유카리의 논리 대결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상반된 스타일의 음악으로 작품을 하나의 캐릭터 쇼로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소극적으로만 움직인다. 공간감을 살려내지 못하는 동선은 큰 의미가 없고, 모든 공간이 오픈되어 있어 미스터리 장르로서의 매력도 발견하기 어렵다. 작품은 비극적 이야기 그 자체에 함몰된 나머지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세트와 조명 등 무대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기능을 간과하고 만다. 그 결과 작품은 말의 전시에 불과해졌다. <용의자 X의 헌신>이 굳이 뮤지컬, 무대예술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도 찾아내지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