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앤을 찾아서, Like
“누가 앤이야. 앤이 누구야.” 뮤지컬 <앤>은 이런 노래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연극반 정기공연의 주인공을 뽑는 과정에서 나오는 노래지만, 이 노래는 <앤>을 그대로 관통한다. <앤>은 11살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의 제법 긴 이야기를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의 챕터로 구분하고, 몸과 마음의 성장을 세 명의 각기 다른 외모와 성격의 인물들로 표현한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은 “아이들은 하룻밤 사이에도 이렇게 큰답니다”라는 마릴라의 대사처럼, 시간의 흐름이라는 한계를 효과적으로 극복한다. 위험하면서도 대단한 앤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줌으로써 인간을 구성하는 복잡성과 다양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특히 세 명의 앤은 ‘누구에게나 앤은 있다’는 문장을 구체화시켜 ‘내 안의 앤’을 소환하는 데 더없이 탁월하다. 고전을 원작으로 삼은만큼 <앤>은 소설 속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대신, 그 상황에서 앤이 겪었을만한 감정들을 음악으로 세심하게 다듬는다. 감정의 여백이 말보다 많은 음악은 관객이 앤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경험을 비추도록 돕는다. 고심 끝에 마릴라가 자신을 받아줬을 때의 기쁨, 다이애나가 인사도 하지 않던 순간의 슬픔, 자신을 키워준 이들을 향한 감사. 비록 모두의 경험이 앤과 같을 수는 없지만, 자라오면서 느꼈을 보편의 감정들을 앤을 통해 불러내는 셈이다. 게다가 햄릿을 꿈꾸고 <줄리엣과 로미오>의 ‘줄리엣’을 원하는 연극반 여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섞여들어 와 <앤>은 여성캐릭터의 목소리가 드문 뮤지컬 안에서 더욱 빛난다.
투박한 비주얼, Dislike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빨강머리 앤>의 가장 익숙한 버전은 일본 애니메이션일 가능성이 높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관찰력이 좋은 앤에게 자연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었고, 애니메이션은 ‘기쁨의 하얀길’과 ‘빛나는 호수’를 따뜻한 색감으로 표현해냈다. 문자보다는 영상이라는 얘기다. 소극장인데다 공간적 제약이 뚜렷한 <앤>은 상상의 영역을 아이디어로 채운다. 매슈의 마차는 말발굽소리를 연상하는 도구로, 싱그러운 초록의 나무는 녹색 가발이 대신하는 식이다. 칠판은 그린게이블의 초록지붕과 매슈의 묘비가 된다. 실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소품들로 만들어낸 것들은 종종 직접적이라 투박하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부실도 없이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공연하는 여고 연극반의 극중극이라는 설정 안에서 이 투박한 비주얼들은 오히려 순수한 초심을 상징하며 면죄부를 받는다. 투박함이 아쉽지만, 이유 있는 투박함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