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한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은 2000년 7월에 태어났다. 열 번의 여름 태양을 먹고 자란 <더뮤지컬>의 몸집만큼 한국뮤지컬시장 역시 넓고 탄탄해졌다. 10년 새 대중에게 한 해 동안 소개되는 뮤지컬이 200편을 훌쩍 넘기 시작했다. 유준상, 엄기준, 김무열, 주원 등 뮤지컬무대에서부터 기본기를 탄탄히 쌓아온 배우들이 TV 속으로 들어갔고, <왓츠업>, <더뮤지컬>과 같은 뮤지컬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도 본격적으로 기획중이다. 이와 함께 아이돌을 비롯해 이름이 알려진 수많은 엔터테이너들은 역으로 새로운 뮤지컬 무대를 넘본다. 더 이상의 장르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2010년 ‘장르잡지’ <더뮤지컬>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뮤지컬을 만드는 관계자와 배우에게는 든든한 백이자 따끔한 질책을 아끼지 않는 조언자로, 관객에게는 친절한 가이드로 자신이 맡은 롤을 충실히 해온 <더뮤지컬>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만의 잔치”에 머물렀다면, 1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이라는 <더뮤지컬>의 박병성 편집장을 만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에 대해 물었다.
먼저 10주년을 축하한다. 7주간의 뮤지컬 공개강좌를 비롯해 전시회, 갈라 콘서트까지 5주년 때와 비교해보면 이번엔 꽤나 판을 크게 벌렸더라.
박병성 : 이번 10주년 행사들이 판을 좀 크게 벌린 게 맞다. 내 성향과 딱 맞진 않지만 대단한 일을 티 안내고 해온 사장님께 상을 줘야 될 것 같았다. (웃음)
7월 12일에 있었던 뮤지컬 갈라 콘서트는 사실 공연 전부터 화제도 많이 됐고, 특히 일반에게 공개된 좌석이 50석뿐이어서 말도 많았다. 그래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지은 것 같던데.
박병성 : 5주년 기념 콘서트가 <더뮤지컬>이 주인공이 돼서 우리 생일파티를 한다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300석짜리 소극장에서 <더뮤지컬>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진행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배우도, 우리들도 즐겁고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에 반해 이번 1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는 좀 더 한국뮤지컬시장을 살펴보는 취지였다. 그래서 콘셉트도 2000년부터 2010년까지의 뮤지컬로 잡았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다보니 좀 더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기구독자는 물론이거니와 뮤지컬 관계자들, 기타 도움주신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판도 커졌고, 의도치 않게 뮤지컬을 좋아하는 일반 관객 분들께 불이익이나 불편함도 드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이야기들이 10년이라는 세월 사이 시장 내 <더뮤지컬>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요소가 된 셈이기도 하다. 그동안 <더뮤지컬>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잡지를 만들어나갔나.
박병성 : 새롭게 트렌드를 만들기보다는 감춰져있던 것들을 드러내 이슈화하는 작업들을 주로 해왔다. 창간 초기에만 해도 국내 뮤지컬 시장에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공연 시스템을 주로 소개하면서 우리 공연문화와 갭을 줄이는 일을 했다. 예전에는 이런 기사들이 워낙 없었기 때문에 각 도시에 통신원을 두고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짚어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다보니 해외 사례를 소개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최근 좀 든다. 잡지는 워낙 느린 매체니까.
10년간 300명이 넘는 배우들도 발굴해냈다. 과거 뮤지컬배우라고 하면 남경주, 최정원만을 떠올리던 시절을 생각하던 때에 비해 뮤지컬배우의 풀도 제법 넓어졌지만, 전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봤을 때 뮤지컬은 굉장히 작은 시장이다. 10년간 인물과 기획 아이템이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았을 것 같다.
박병성 : 처음엔 인물 표지가 아닌 이미지 표지였다. 인물표지를 시작한 건 <더뮤지컬>이 인정하는 배우, 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영광된 자리라고 스스로 만들고 싶었던 게 있어서 어느 정도 인지도나 인기가 없으면 표지로 내세우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늘 표지인물이 되풀이 되더라. 인터뷰를 하는 입장에서도 시장 자체가 커졌다 하더라도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배우들의 풀은 넓지 않다. 관심이 있거나 두각 되는 면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는 건데 그런 배우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웃음) 한 달에 4명 이상의 인터뷰가 나가기 때문에 형평성에 맞게 치우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소개하는데 팬텀, 크리스틴, 라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소개할 수는 없는 거다. 두 번째면 모를까. 그런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겹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인물 선정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겹쳐지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을 피해가면 오히려 얻어야 할 것들을 못 얻는다.
많은 부분에서 밸런스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이다. 독자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추고 있나.
박병성 : 우리가 다루는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전문지다 보니 용어자체가 낯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독자들이 스티븐 손드하임을 안다는 가정 하에 기사를 쓰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손드하임 앞에 수식어를 일일이 붙일 순 없다. 그렇다고 사전을 만들 수도 없고, 일일이 찾아보라고 하기도 힘들고. 그런데 손드하임을 다루면 또 다른 누구는 식상하다고 한다. 스펙트럼 자체가 너무 넓은데 중간점을 맞춘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획기사나 해외 통신원 기사는 마니아, 뮤지컬을 깊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꼭지로 생각하고 그 외의 부분들은 좀 더 쉽게 대중들이 원하는 섹션으로 하려고 한다. 가장 좋은 건 어려운 얘기를 쉽고 재밌게 쓰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 (웃음)
최근엔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조금씩 대중화되면서 좀 더 대중친화적 잡지가 된 거 같다.
박병성 : 전문지라고는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좀 더 대중적이 되려면 일반 대중의 요구도 만족시켜야 한다. 이미 뮤지컬에 폭 빠져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잡지가 된다면 대중화를 위한 역할을 하기 힘들 것 같다. 뮤지컬 마니아들을 위한 내용도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뮤지컬을 좋아할 수 있는 소스도 줘야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컬처쪽으로 외연을 넓힌 건가. 2009년부터는 미술, 무용 외에도 타이거JK, 진중권, 캘리그라퍼 강병인 등 문화계 전반에 걸친 인사들의 인터뷰도 많아졌는데.
박병성 : 컬처 섹션은 좀 고민이다. 예전에는 결벽증처럼 뮤지컬이 아니면 싣지 않았었다. 연극, 무용에 대한 요구가 있었을 때도 아주 적은 지면에 작품 소개 정도로 그쳤고, 무대 공연이 아닌 이상 우리 책에서는 안 다루는 게 원칙이었는데 그 섹션은 우리 원칙에서 벗어나는 지면이라 생각한다. 컬처 섹션을 통해 새로운 독자를 유입시키는 것이 목표였는데 우리 의도보다는 약간 빗나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한번 살펴봐야할 시점인 것 같다.
콘텐츠 소개 외에도 산업적인 측면에서 장르잡지가 해야만 하는 일들도 많다. <더뮤지컬>은 그 중 한국뮤지컬산업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박병성 : 국내 뮤지컬은 비평문화가 약하다. 우선 그 역할을 <더뮤지컬>이 해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좋은 비평가를 양성해보고 싶다. 선발만 한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과거엔 그만한 인재들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무르익은 것 같아서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고. 뮤지컬 관련 시상식이 2개나 있긴 하지만 작품성만으로 평가하는 <더뮤지컬>만의 시상식을 해보고 싶다. 상금을 줄 순 없겠지만 (웃음)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작품이라는 영예를 주는 것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더뮤지컬>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박병성 : 원래 공연을 좋아했지만, 뮤지컬을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극에 애정이 많았다. 그런데 그 당시 청소년 문화잡지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잡지를 만들고 있었고 공연을 좋아했었다는 게 <더뮤지컬>이 생기면서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동했고 이후 갈 데가 없어서 (웃음) 계속 해왔는데 수석기자도 시켜주고, 2005년부터 편집장도 시켜주더라. (웃음)
갈 데가 없어서 계속 있다고 했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박병성 : 나한테 이 일이 잘 맞는다기보다는 내가 해야 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연극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걸 해놓은 상태라 그 판에 들어가면 내 나이 몇 살 때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뮤지컬은 할 게 너무너무 많아서 뭘 먼저 해야 될지 모를 정도였다. 사람들이 뮤지컬이라는 걸 너무 몰랐다. 음악과 드라마, 춤이 함께하는 장르라고 설명하면 다 알지만 정말로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좀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작품분석을 정말 많이 했다. 그렇게 내 스스로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고 하다 보니 벌써 10년이 됐더라.
자기잔치였던 5주년에 비해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위치에 이르렀다. 10년간 해오면서 가장 재밌었던 해는 언제인가.
박병성 : 어쩌다보니 정말 그런 위치에 왔다. (웃음) 2005년부터 2007년까지가 제일 좋았던 시절인 것 같다. 시장이 활성화되기도 했고, 갑자기 눈에 띄게 붐이 일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고, 그 시도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투자들도 많았다. 특히 2007년에는 달마다 기획기사를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워낙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흐름이 만들어지다 보니 이슈를 잡아서 소개해주고 해외사례와 비교해주면 됐다. 그런데 2009년부터는 이슈가 잘 안 만들어진다.
지금의 시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박병성 : 지난 10년간 앞으로 이런 성장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이 있었다. <렌트>나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엄청나게 판을 키워냈지만, 이제 라이선스 시장은 올 때까지 온 것 같다. 어떤 작품이 들어와도 지금 우리 경쟁구도 안에서는 <오페라의 유령>때처럼 키울 순 없다. 지금은 시장자체가 너무 빨리 달려와서 피로가 쌓인 상황인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시장이 곤두박질치는 과정 안에서 자정되고 안정될 것이다. 우리 관객규모에 맞게 시장이 새롭게 재편될 필요가 있는데, 그 기폭제가 창작뮤지컬에 나오지 않으면 과거와 같이 가파르게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제작현실의 변화만큼이나 독자의 변화도 체감할 것 같은데.
박병성 : 과거의 독자들은 배우를 좋아하는 만큼 공연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있었다. 배우 하나에 좌지우지되기 보다는 작품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도 하고 인정도 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숨어있고, 큰 목소리를 내는 건 아무래도 팬클럽 쪽이다 보니 매체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좀 더 공연자체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더뮤지컬>의 10년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박병성 : 창간 초기에는 무가지에 비정규 발간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이제 어느 정도 셋팅이 다 끝난 느낌이다. 예전에는 한호 한호 발간하는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무엇인가를 하기에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적어도 10주년 행사를 같이 병행하는 걸 보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엔 편집위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지만 이제는 발을 좀 빼도 경험 있는 친구들이 꽤 있으니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할 것들이 참 많았는데 따지고 보니 하나도 안한 것 같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일들이 좀 가능하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던 대로 잡지는 느린 매체고 사양산업이기도 하다. 특히 전문지로 10년을 버틴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밥은 잘 먹고 다니나. (웃음)
박병성 : 나는 밥 잘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심적으로 잘 못 드시는 것 같다. (웃음) 콘텐츠 자체가 대중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광고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아 다른 잡지에 비해 광고 의존도가 상당히 낮다. 대신 광고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 상태인데 일반 잡지에 비해 광고의존도가 낮다보니 오히려 경제적인 것들은 좀 더 나아지는 측면도 있다. 보통 잡지들이 광고와 판매 수익이 6:4거나 심하면 8:2까지도 가는데 우리는 그 반대라고 보면 된다. 다른 공연 잡지들에 비하면 정기구독자도 많고 많이 파는 편이다. BC카드 쪽에서도 우리 잡지를 제값에 달마다 몇 천부씩 사간다. (웃음) 그건 정기독자 몇 천 명이 있는 것과도 같다.
더 이상 종이잡지가 핫한 아이템이 아닌 상황에서 다른 쪽으로의 판로를 생각해본 건 없나.
박병성 : 온라인과 종이잡지를 병행하는 것이 요즘 일반적인 추세인데 아직까지 <더뮤지컬>은 온라인 사업을 늘리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과월호 작업을 진행 중이고, 네이버와 함께 뮤지컬 DB 사업을 하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사이트를 좀 더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사업들을 찾아봐야겠지.
<더뮤지컬>은 국내 유일한 뮤지컬 잡지다. 경쟁지가 없다는 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박병성 : 예전에는 원고 쓰면서 고민이 되면 이것저것 더 찾아보고 그러다보면 의외의 것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서 어려우면서도 재밌었는데, 요즘은 기획이 나오면 대략 원고의 방향이 머릿속에 그려지다 보니 큰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재미가 없고 매너리즘이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재밌게 접근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완벽하게 이해해서 갖고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해하는 족족 뱉어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 참고할 수 있는 텍스트가 많은 것도 아니고.
경쟁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잡지 중 롤모델이 있나.
박병성 : 굳이 꼽는다면 <씨네21>이 될 것 같다. <씨네21>은 영화산업내 높은 영향력도 가지고 있고, 판매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7~8천원이면 볼 수 있는 영화와 10만원을 줘야 볼 수 있는 뮤지컬은 너무 다르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씨네21>이 잡지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더뮤지컬>을 앞으로 어떤 잡지로 만들고 싶나.
박병성 : 개인적으로는 좀 더 전문적으로 가고 싶은 게 있다. 하지만 그게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고, 독자들과 우리가 어느 정도 소통하고 있는지도 점검해봐야 하는 단계인 것 같다. 내부적으로도 좀 더 친구들의 의견을 반영해 기회를 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시아시장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다. 많은 제작사들이 한국을 아시아뮤지컬시장의 선도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아시아 통신원을 두고 시장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아직은 빠르고 시장자체가 미미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비평가 양산이나 시상식 외에도 오픈된 공개 리뷰 같은 것들도 해보고 싶다. 백분토론처럼.
배우들의 10주년 기념 코멘트 중 유준상의 “오래 버티실 거죠?”라는 코멘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오래 버티실 거죠?
박병성 : 도와주시면. (웃음) 과거에 비해 점점 좋아지는 과정이었는데 시장이 위축되는 바람에 분위기가 살짝 꺾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클립서비스 내부에 있기 때문에 여러 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같이 할 수 있는 수익모델들이 있다. 회사가 버틸 수 있는 맷집 안에서의 손실만을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거다. 수익을 낸다면 더 바랄게 없고.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야 한다. 전문지는 절대적으로 시장과 잡지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해야 되는데, 아무래도 기획사와 연관되어 있는 곳에서 만들다보니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다른 제작사에서는 경쟁업체일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깨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