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린다는 문장은 절박함의 표현이다. 일정한 시간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 설정의 콘텐츠가 죽음과 가까운 것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은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타임 루프’가 운명을 바꾸진 않는다.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인물들은 분노와 절망을 느끼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사랑을 표현하고 함께 있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으로. 유한한 시간 안에서 간절함은 배가 되고, ‘지금 이 순간’의 힘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뮤지컬 <원 모어>는 ‘타임 루프’ 콘텐츠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특별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들이 펼쳐지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도움을 주는 이가 있다. 주인공 유탄은 누적된 실패의 경험으로 무기력한 패배감이 짙은 인물이다. 모진 말들로 관계를 종식한 후 그가 느끼는 죄책감이 ‘타임 루프’로 이어진다. ‘타임 루프’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 속에 갇힌 인물이 동일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며 수많은 감정을 알아채고 변화하는 것에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당혹해하는 모습은 코미디가 되고,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들은 서스펜스가 된다. <원 모어> 역시 10여 차례의 ‘타임 루프’를 작품의 중심에 두고, 유탄의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술에 취해 해롱거리거나 호들갑을 떨고, 화를 낸다.
주변의 상황은 일정한 패턴 안에서 조금씩 변주될 뿐, 결국 ‘타임 루프’라는 설정은 원맨쇼에 가깝다. 배우의 매력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한계가 또렷하기 때문이다. <원 모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타임 루프’를 새롭게 해석한다. 규칙적인 선율과 반복으로 시간에 갇힌 인물의 상황을 그려낸다. ‘타임 루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시도들은 같은 넘버를 다른 리듬으로 변주함으로써 표현한다. 음악적 시도들이 배우의 연기만큼 도드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 모어>의 음악이 대극장 뮤지컬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기보다는 담담한 이지 리스닝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음악은 관객이 인지하기 전에 자연스레 작품에 녹아들며 정서를 만들어내는 데 쓰인다.
미세한 변화들이 조금씩 모여 발견하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타임 루프’를 경험한 유탄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보지 못했던 주변의 응원과 선의, 7년 전 밴드를 시작하며 다짐한 초심과 열정을 찾아낸다. 다만, 작품의 진행방향이 유탄과 여자친구 다인의 관계 중심이기 때문에 밴드나 가족의 이야기에 소홀한 면이 있다. 대신 <원 모어>는 유탄과 다인의 시작과 끝을 통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법을 말한다. ‘시간에 갇힌다’는 경험이 실존하지 않아도 ‘타임 루프’ 콘텐츠가 계속 소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쉽게 잃어버리는 것들을 다시 되새기고, 새롭게 감각하고, 비로소 더 잘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