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구내과 병원>의 모든 것은 낯익다. 무대 위에는 작은 오리 인형부터 우산, 도면통까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병원 간판과 진료실은 오래된 병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도 한 줄로 정리할 만큼 또렷하다. 까칠하되 환자에게만큼은 친절한 의사, 열정이 넘쳐 자주 실수를 하는 신입, 분위기메이커 간호사, 적당한 오지랖과 넓은 품을 가진 중년의 환자, 성실하고 모범적인 청년 환자, 발랄한 소녀 환자, 손자 걱정에 마음 편할 날 없는 할머니.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상처를 나누고 곁을 지킴으로써 성장한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90년대 스타일의 발라드는 다음 선율이 연상될 정도로 친숙하고, 정박에 딱딱 떨어지는 플로우의 랩은 그야말로 올드스쿨이다.
<구내과 병원>의 이러한 익숙함은 ‘귀신을 치료하는 병원’이라는 낯선 설정을 위한 선택이다. 90년대 스타일의 음악들은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담아냄과 동시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리얼리티를 살린 공간과 소품은 특별해 보이는 병원이 우리의 생활에 가까이 있음을, 그로 인해 죽음과 삶이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형적으로 보이는 인물들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감정을 깊게 표현함으로써 더 많은 관객과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할머니 손에 자란 손자는 당연히 그와의 이별을 유해하고 싶고, 죄책감으로 10년을 버틴 의사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부모보다 먼저 떠난 아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시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살아온 이가 함께 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모두가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이가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구내과 병원>은 화려하거나 특별한 무엇보다는 관객의 공감을 동력삼아 움직이는 셈이다. 먼저 떠난 자의 원망과 미안함, 남겨진 자의 죄책감과 그리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마 간호사의 존재다. 그는 모두에게 살뜰하고 병원의 궂은일을 도맡음으로써 이곳과 저곳을 잇는다. 환자와 의사 사이, 신입 기준과 구 원장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관객의 낯선 마음을 무대로 가깝게 당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당연히 작품의 코믹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관찰자로서 그와 연결되어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돕는다. 넓고 얕게 모두를 품어내는 것으로 존재하는 이런 캐릭터들은 기능적으로도 다양한 롤이 주어지는 탓에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기 십상이다. 그러나 배우 김국희는 존재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적절한 타이밍과 호흡으로 작품의 균형을 유지한다. 덕분에 이야기는 부드럽게 이어지고 인물들은 자연스러워졌다.
죽음을 다루는 모든 콘텐츠는 결국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구내과 병원>은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방법을 착하고 정석적 방식으로 우직하게 밀고 간다. 고개를 떨구고 흘리는 배우들의 눈물이 무대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진심이 담긴 정석은 힘이 세다. 사실적인 세트와 보편의 정서를 자극하는 서사가 <빨래>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같은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창작뮤지컬을 연상하게도 한다. 일정한 패턴으로 제작되는 창작뮤지컬에서 드물게 발견된 클래식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