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무게를 견뎌낸 고은성, Like
오래전 드라마의 카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를 다시 꺼내보자. 햄릿이 된다는 것은 그 카피의 전부나 다름이 없다. 400년도 더 된 희곡이 뮤지컬이 되고, 그 뮤지컬의 또 다른 햄릿이 홍광호라면 더더욱. 홍광호와 함께 캐스팅된 고은성은 이 거대한 무게에 짓눌리는 대신 “아버지를 죽인 삼촌에게 단호하게 복수할 줄 아는 반항아”(<동아일보>)로 자신의 햄릿을 포지셔닝한다. 그의 말처럼 고은성의 햄릿은 젊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햄릿”만을 외치는 아버지의 유령을 따라갈 때도, 남편의 장례식 2시간 만에 새로운 결혼식을 올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랑합니다. 나의 숙모님”이라 말할 때도 그는 1초도 주저하지 않는다. 주저함 없는 햄릿을 위해 고은성은 뛰고 구른다.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빈정대는 화법과 행동이 그의 거침없는 주장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이다. 테크닉적으로 아직 설익은 듯한 그의 소리는 불안에도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햄릿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지난해 JTBC <팬텀싱어>를 통해 보여준 무대 밖의 익살스러운 면까지 서사에 녹아들면서 대극장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여러 가능성도 내비쳤다. 배우의 이미지와 현재가 캐릭터와 잘 결합된 드문 케이스.
새롭지만 낯선, Dislike
‘얼라이브’라는 형용사를 내세운 만큼 <햄릿: 얼라이브>는 고전의 고루함 대신 현대적 감각으로 동시대적 공감을 추구한다. 간결하고 모던한 세트, 왕족임을 드러내는 몇 개의 소품을 제외하면 현대적인 의상들이 의도적으로 시대와 장소, 계급을 지운다. 조명 역시 일방적으로 인물을 비추는 대신, 다각도에서 쏟아지며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거울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무대 위 움직이는 모든 것이 햄릿을 위한 것이지만, 오로지 햄릿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오브제는 종종 객석을 비추고, 객석을 등진 햄릿은 관객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의 조명을 받으며 선왕의 영혼을 영접한다. 김경육 작곡가의 음악도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는 아리아보다는 이들이 극한의 감정에 이르기까지의 정서에 집중하며 관객이 상황 자체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햄릿: 얼라이브>는 인물을 통한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무대 위의 다양한 요소들로 햄릿이 경험하는 바를 관객이 함께 하도록 한다. 연출가 아드리안 오스몬드는 이를 통해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햄릿: 얼라이브>와의 접점을 찾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에서 통한다는 대극장 뮤지컬의 흥행 공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드리안 오스몬드는 2007년 <스위니 토드> 한국 프로덕션의 초연과 2012년 <번지점프를 하다> 초연에서도 기존과는 다른 관점의 연출로 주목을 받았고, 이번 작품에서도 새로움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지난 작업들은 재연 연출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햄릿: 얼라이브>로 보여준 시선이 낯설고 불친절한 것 역시 사실이다. 새로움은 과연 낯섦을 이겨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