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김종욱 찾기>, 배우 이창용 (텐아시아)

공유와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영화 <김종욱 찾기>는 동명뮤지컬에서 시작됐다. 외국에서는 <시카고>, <헤어스프레이>, <스위니 토드> 등 영화가 된 뮤지컬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김종욱 찾기>가 처음이다. 7년째 대학로 무대를 지켜온 뮤지컬 <김종욱 찾기>도 영화개봉과 함께 지난 11월 16일부터 강남 KT&G 상상아트홀에서의 공연을 시작했다. 새로 꾸려진 배우는 조강현, 방진의, 정운선, 임기홍, 김동현, 그리고 이창용. 2007년 <알타보이즈>로 데뷔해 <쓰릴미>, <내 마음의 풍금>, <어쌔신>,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 제법 탄탄한 작품을 자신의 프로필에 쌓아온 이창용이 <김종욱 찾기>를 통해 생애 첫 로맨틱코미디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답변은 “데뷔 후 2년간은 아무것도 몰랐다.” 데뷔 3년차, 여전히 어렵고 희미한 안갯속을 헤치며 전진 중인 이창용을 만났다.
엄기준, 김무열, 최지호 등이 거쳐간 <김종욱 찾기>로 본격 훈남대열에 합류한 것을 축하한다. (웃음) 그런데 배우, 스태프 만나는 상견례 자리에서 “멀티맨의 외모를 가진 김종욱”이라고 인사했다던데.
이창용: 그동안 이 작품을 했던 배우들을 보면 멋진 이미지를 가진 분들이 많지 않았나. 키도 크고. (웃음) 나도 <김종욱 찾기>를 본 적이 있으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김종욱 같지 않지만 김종욱 역을 하게 된 이창용입니다” 라고 얘기 한 거다. 그리고 나랑 정말 친한 사람들도 내가 <김종욱 찾기> 한다고 하면 “김종욱?” 이러면서 당황한다. 그러면 난 “아니겠지만, 김종욱이야” 이러고. (웃음)
이미지보다 그동안 로맨틱코미디를 하지 않아서 <김종욱 찾기>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더 놀랐다. 거기다가 작품 속에서 여자와의 쌍방향 연애는 거의 처음이지 않나.
이창용: 나이가 어려서도 그렇지만 그동안 귀여운 캐릭터들을 좀 해왔던 것 같은데, 이런 것도 해봐야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지 싶었다. 대학로가 아닌 또 다른 공간에서 처음 한다는 것도, 참여하는 좋은 멤버들도 작품을 선택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요즘은 작품이 되고 안되고가 굉장히 중요한데 영화 이슈도 있었으니까. 연습을 하다 보니 나만 열심히, 편안하게 연기하면 되는구나 싶더라.
그런데 사실 로맨틱코미디는 주로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남자배우입장에서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다.
이창용: 그래서 연습 초반엔 굉장히 힘들었다. 대사들이 민망해서. (웃음) 거기다가 제목이 <김종욱 찾기>이기 때문에 여자입장에서 진행되는 게 당연하고. 같이 공연하는 (조)강현이는 지난번에도 7개월 동안 공연을 했는데, 강현이가 그랬다. 멀티맨은 워낙 캐릭터가 잘 짜여 있어 배우들이 표현만 제대로 하면 확 주목을 끌 수 있는 배역이고, 여자는 작품 자체가 여자입장에서 쓰여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만 남자(이창용) 역은 너무 오버하면 안 되는 거 같다고. 근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살릴 때 살리고, 받쳐줄 때 잘 받쳐주고.
그 줄타기가 진짜 중요할 것 같다. 이제 좀 괜찮아졌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너무 힘든 대사 같은 게 있나.
이창용: 김종욱의 대사들이 특히 그런 거 같다. 다리를 다친 여자에게 “이대로는 안돼요”라고 하는 거. 처음엔 이 여자랑 대체 얼마나 친하길래 그런 말을 하나 싶기도 했다. 거기다가 거절하던 여자가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고 다음 노래로 넘어가야 돼서 굉장히 단호해야 한다. 남자다움을 보여주는 거지. 그 대사랑 인도에서 여자랑 작별할 때 하는 “장미 한 송이”. (웃음) 아으, 나는 정말 내 자신이 끔찍했었다. (웃음) 근데 김종욱은 정말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게 해야 된다는 점에서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본인이 가진 틀을 깨는 작업들이 필요했을 것 같다.
이창용: 물론 김종욱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자 이창용 캐릭터도 참 힘들다. 차라리 철수, 영희라고 하면 편할 것 같은데 내 이름으로 가다 보니 내 자신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나랑 (정)운선이 누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서 둘이 장난치고 그러는 게 극에서 보이는 거다. 거기다가 내가 그다지 조용한 성격이 아닌데, 극 중 이창용은 소심한 성격이라 화도 잘 못 내는 캐릭터다. 연습 초반엔 화가 나는 상황이면 진짜로 화를 내버린 적도 있었다. 연습이 거의 끝나갈 때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알겠더라. 그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실수가 잦은 날에는 관객들이 김종욱이라는 인물을 굉장히 느끼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 다음 공연 때는 푹 쉬고 목도 거의 안 쓰고 공연을 했더니 반응이 달랐다. 요즘엔 그런 걸 많이 느낀다. 몸상태를 체크하면서 공연하는 거,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다.
그래도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았다. 그동안 2인극을 두 작품 해서 그런지 노하우가 좀 쌓인 듯 보인다.
이창용: 예전에 (김)무열이 형이랑 <쓰릴미>를 할 때 가장 많이 느꼈었던 거다. 호흡이라는 거. 형이랑은 연습기간이든 공연기간이든 얼굴을 보면 리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씩 꼭 했다. 빨리빨리 하면 한 40분 정도가 걸리는데, 그렇게 하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이하 <스토리>)때도 형들이랑 하다 보니 좋아졌다. 2-3인극일 경우엔 대사가 많다 보니 조금만 어긋나도 힘들어진다.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좀 좋아진 것 같다.
올여름 <스토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좋아하는 선배로 류정한을 꼽기도 했었는데, 같이 연기해보니 어떻던가.
이창용: 같은 작품을 한 적은 있었지만 상대역은 처음이었다. (류)정한이 형은 굉장히 정확하고 욕심도 많고 굉장히 멋있다. 진짜 기품이 있다. 늘 작품의 호흡을 가지고 있지만 한마디 한마디 던지는 게 정말 재밌는 형이다. 특히 다른 배우의 연기에 대한 조언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고 알고 있고, 다른 공연들에서도 배우의 자세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은 있지만 작품 속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굉장히 많은 조언을 해줬다. 거기다가 집도 같은 방향이라 많이 태워주셨고. (웃음) 연습실이 되게 멀었는데 차 안에서 참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이 차이 나는데, 선배님이 어디 나 같은 애랑 장난을 치고 싶겠나. 그런데 참 잘해주셨다.
배우들끼리 굉장히 끈끈했었나 보다.
이창용: (신)성록이 형이 형님들한테 정말 잘한다. 애교도 잘 부리고. (웃음) 그래서 배우들끼리 술도 많이 마셨다. 성록이 형이 맛집 알아 와서 먹으러 다니고. 그들과 함께 같은 작품을 했다는 거 자체가 나한텐 큰 행복이었다. 나도 놀랬던 건데 어느 순간 친해지고 형들이 좋아져 버리니까 장난을 치고 있더라. 그렇게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이 되게 신기했다.
그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공연 내내 류정한과 한 무대에 서도 기죽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창용: 나도 처음 연습할 때는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무대 리허설 첫날 동숭아트센터 직원분이 거짓말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힘을 줬다. 나를 속게 만들었다. “류정한 씨랑 있는데 절대 나이 차이 안보이고, 진짜 친구 같애. 절대 기죽을 필요 없어”라고. 정한이 형도 더 해도 된다고 많이 열어주셨다.
<스토리>를 공연 초반과 후반에 봤는데 많이 다르지 않더라. 예전에 비해 공연의 기복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이창용: <쓰릴미> 때는 기복이 정말 심했다. 첫 주연작이었고, 부담감이 너무 커서 스스로 못해내는 게 너무 많았었다. 첫 공연 때 딱 완성해나가야 하는 게 정답인데, 나는 공연을 진행해나가면서 캐릭터와 연기를 서서히 잡아가는 스타일이 좀 있었다. 그 점에서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하게 갔다고 생각한다. 그건 공연이 들어가기 전 워크숍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본도 미리 접했고, 음악도 잡아나간 상태에서 본공연을 했다. 다른 작품이랑 겹치지도 않았고, 다른 형들이 바쁠 때 나에겐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거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되는데... <스토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스토리>로 배우로서, 자연인 이창용으로서 자기성찰을 많이 했나 보다.
이창용: 친구나 지인들을 대하는 게 많이 달라졌다. 내 친구들이 공연을 보러 많이 왔는데 농담 삼아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라고 하더라. (웃음) <스토리>를 하면서 친구들이랑 안 좋았던 지난 오해들 풀면서 울었던 적도 있다. 그런 점들이 많이 달라졌지.
연출을 맡았던 오디뮤지컬의 신춘수 대표가 <스토리>를 <멋진 인생>이라는 영화로 만들었는데, 영화작업은 어땠나.
이창용: 처음엔 재미가 없었다. (웃음) 갑자기 집중해서 연기해야 되고 한참 기다렸다가 또 해야 되니까. 정한이 형이나 나는 특히 더 힘들었는데 시간이 좀 흐르니까 재밌더라. 영화에 대해서는 진짜 모르지만 요즘엔 그 경험 덕에 영화를 보면 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찍었겠구나,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그리고 영화는 배우의 표정이 바로 드러나 버리니까 정말 편하게 대해주더라. 이것저것 신경 써주는 것도 많고. 근데 난 그게 너무 민망하고 창피해서 “저한텐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웃음) 그리고 내 이름이 박힌 배우의자를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웃음)
2007년에 데뷔했으니 곧 있으면 3년이더라.
이창용: 보름만 있으면 3년이다. 벌써. 시간 진짜 빨리 간다. 예전엔 프로필 작성할 때 작품이 하나도 없었는데, 하나씩 하나씩 늘어 벌써 아홉 번째 작품이다. 3년 전 사진이랑 지금 사진 보면 많이 늙기도 했고. (웃음) 빨리 늙고 싶은 것도 좀 있어서 일부러 수염도 안 깎고 그런다.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귀여운 역보다는 어른스러운 역할도 하고 싶으니까. 어른스럽게 생각하고 차분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을 보면 이미지상으로 겹치는 작품이 거의 없다. <쓰릴미>를 했다가 <내 마음의 풍금>을 하고, <어쌔신>을 했다가 <김종욱 찾기>를 한다니.
이창용: 나이나 경력에 비해 작품운이 참 좋다.
정말 다양한 작품을 했는데, 이제 본인한테 어떤 게 맞는지가 좀 보이나.
이창용: 어릴 때는 <지킬앤하이드>를 하고 싶어, 라는 꿈을 꾸면서 ‘지금 이 순간’을 많이 부르고 그러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작품을 보면 나랑 맞는 코드가 뭔지 구분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디션도 무모하게 보지 않는다. 물론 많이 떨어져 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뭔지 알겠더라. 불과 1년 새 많은 걸 깨달았다. 데뷔 후 2년간은 아무것도 몰랐다. 예전엔 좀 다양하게 했는데 이제는 나랑 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선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명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가장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나.
이창용: 얼마 전에 누가 해준 얘기인데, 대본을 보고 어떻게 연기할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게 연기하고 있는지를 한번 밖에서 보고 캐릭터를 설정하라는 말을 하더라. 혼자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전체 그림을 보라는 얘기겠지.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공연은 생활리듬도 일반인들과 다르다 보니 너무 힘들다. 그런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최근 1년 사이 느낀 게 많아서 앞으로의 작품은 다른 시선과 각도로 연기 해보고 싶다. 나는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이 나이에 연기에 대해 논하는 거 자체가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스토리>를 할 때 앨빈 역을 함께 한 (이)석준이 형한테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안돼서 미치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형이 “스물일곱에 무슨 연기를 잘하려고 해. 나도 서른 넘어서 연기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는데. 넌 지금 연기가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을걸”이라고 하더라. 진짜 그랬다. 잘해야 되는데 어떻게 잘해야 되는지를 슬슬 고민할 때가 왔다. 철도 아직 덜 들었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3개월, 6개월, 1년, 3년, 6년, 10년식으로 주기가 있다더라.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지,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고민하게 되는. 지금이 그때인가 보다.
이창용: 작품을 하다 보니까 욕심은 더 생기고 빨리 유명해지고 싶고 그랬다. 내 목표를 망각하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거기다가 하고 싶은 작품 오디션에 떨어지고 하니까 죽겠더라. 그런데 배우를 하다 회사 다니는 친한 선배가 “너랑 나랑은 수습사원이야”라고 했다. 오디션은 당연히 떨어지라고 있는 거고, 떨어져 봐야 되고, 떨어지고 난 이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야 된다고. 당연히 있는 과정이니까 인턴 얼른 마치고 정식사원이 되고 난 이후에 간부로 올라가자고.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마음가짐이었던 거다. 난 아직 수습사원이다. 2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고통도 상처도 받고 하다 보니 욕심도 생겼는데, 그때에 비하면 이젠 정말 중요한 시기를 겪는 것 같다. 잘하는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무기가 아직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핵을 준비해야 한다.
한번 한 작품은 잘 하지 않는 편인 거 같던데, 시간이 지나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이창용: <쓰릴미>는 언제든 다시 했으면 좋겠다. 서른 넘어서 해보고 싶고, <스토리>는 좀 더 나이 들어서 토마스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블 데드>. 샤워도 못하고 피 묻은 상태로 자는 꿈까지 꾼 적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육체적으로 힘든 작품인데 너무 재밌다. 유일하게 목의 피로도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관객들이 너무 좋아해주셨다. 난 관객들이 재밌어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