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 27년 만에 한국에서 숨쉬는 장발장 (텐아시아)

“개그맨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진 않지만, 개그맨 출신이 얼마나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하고 싶었다. 그동안 그 작업을 계속 해왔고, <레미제라블>은 그런 의미에서 절실한 작품이었다.” 27년 만에 한국어로 공연될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장발장은 정성화다. 배고픈 조카를 위해 훔친 빵 한 덩어리 때문에 죄수번호 24601로 불리며 평생을 쫓기던 남자. 정성화의 페이소스 넘치는 얼굴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영웅>과 <라카지>를 오가는 그의 목소리에는 카리스마와 따뜻함이 공존한다. 분노와 자비를 동시에 가진 장발장과 그동안 인물의 이면을 무대에 선보인 정성화의 조합은 <레미제라블>을 기대하게 하는 제 1의 요소다.
1년을 책임질 마흔 명의 배우들
지난 20일에 열린 <레미제라블> 제작발표회는 11월 3일 시작될 본 공연을 앞두고 캐스팅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노래와 연기, 외적인 이미지까지 캐릭터와 꼭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한 긴 오디션 끝에 마흔 명의 배우가 선택됐고, 이들은 연습기간을 포함해 꼬박 1년간 배역의 이름으로 용인, 대구, 부산, 서울에서 살아갈 예정이다. <맨 오브 라만차>의 페드로부터 <아이다>의 조세르, <조로>의 라몬까지 2007년 이후 주로 악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맡아왔던 문종원은 비슷한 노선의 정점에 있는 장발장의 추적자, 자베르 경감에 캐스팅됐다. 청순한 외모에 단단한 목소리를 가진 조정은은 딸 코제트를 위해 헌신하는 판틴으로, 김우형은 <미스 사이공>의 존을 연상시키는 혁명운동의 리더 앙졸라로, 임춘길과 박준면은 묵직한 극에 활력을 불어넣을 떼나르디에 부부로 출연한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던 젊은 세 남녀 마리우스, 에포닌, 코제트는 신선한 얼굴로 채워졌다. 사춘기 소년의 풋풋함으로 코제트를 사랑하는 학생 혁명 단체의 멤버 마리우스 역에는 일본 ‘사계’에서 활동해온 조상웅이, 지난해 KBS <안녕하세요>에서 동생과 함께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불러 화제를 모았던 이지수는 10차에 걸친 오디션 끝에 코제트로 뮤지컬에 데뷔한다.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으로 적진에 뛰어드는 에포닌 역을 맡은 박지연은 공개된 오디션 영상에서 눈물을 흘리며 ‘On my own’을 불러 자신을 각인시켰다. 어린 코제트와 가브로쉬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는 “아파도 안 되는” 원캐스팅으로 관객을 만난다.
200여년을 함께하는 역사의 동시대성
원캐스팅, 1년간의 공연기간, 총 4번의 무대 이동. 한국 프로덕션의 고된 길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작품이 가진 힘”이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빵을 훔쳤던 장발장은 지금도 존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몇 년째 쫓기는 이도 드물지 않다. 시민들은 오늘도 자유를 위해 거리로 나오지만, 시체에서 금니를 뽑아가는 떼나르디에 같은 이들도 여전하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세계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레미제라블>은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힘겹게 버티는 ‘비천한 자들’의 하루하루로 27년째 전 세계 무대에 존재한다. 그리고 웅장하면서 처연한 음악은 이 혁명의 기운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과 같은 선동적 음악은 물론이고, 장발장의 ‘Bring him home’이나 판틴의 ‘I dreamed a dream’ 등은 감성적인 가사로 관객의 가슴에 다가가는 곡이다.
<레미제라블>은 올 12월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앤 헤서웨이 등이 출연한 동명영화로 소개될 예정이며, 김연아 역시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장발장은 그렇게 우리 곁에서 숨쉰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용인 포은아트홀 개관작(2012.11.3~11.25)으로 시작해 대구 계명아트센터(2012.12.8~2013.1.19), 부산 센텀시티 소향아트센터(2013.2.14~3.10)를 거쳐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2013.4.9~9월말)에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