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무대 위의 스페셜리스트 조승우 (텐아시아)

스크린이 아닌 무대 위의 조승우는 참 얄밉다. 다작을 하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4년 <지킬앤하이드>에서부터 <헤드윅>, <맨 오브 라만차>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여우 같았다. 작품이 가진 목표를 정확하게 인지해 딱 그만큼의 연기를 무대에 펼쳐놓았고, 자신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작품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넓은 시야로 관객을 쥐락펴락할 줄 아는 건 기본이고, 적어도 무대 위에서는 그의 작은 키가 단점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대를 장악했다. 대중의 인기와 관계자들의 지지를 동시에 받아온 그는 영리한 프로였다. 그런 그가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무대는 얄밉게도 특별하다.
한시도 쉬지 않는 무대 위의 치열함
일단, 2006년에 이어 3번째 <지킬앤하이드> 무대에 선 조승우의 지킬과 하이드가 한층 성숙해졌다. 2004년 초연 당시 스물다섯이었던 그가 그려낸 지킬은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조지킬’은 더 이상 맨몸으로 무작정 돌진하지 않는다. 그의 지킬은 어느새 굽힐 수 없는 신념을 가졌으되 사고의 유연성마저 놓치지 않는 여유로운 영국신사가 되어 있었다. 반대편에 선 하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 같은 면모와 함께 유머를 갖춘 조승우의 캐릭터분석은 하이드를 그저 단순한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아 <지킬앤하이드>를 훨씬 더 다층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2시간 4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동안 그는 조명이 비추든 비추지 않든 각 신이 가진 목적의식에 맞게 끊임없이 연기했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사소한 디테일은 간단한 손동작 하나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지킬의 마음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와의 관계를 통해 기쁨, 그리움, 불안, 슬픔 등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감정의 단계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사실 조승우는 같은 배역을 맡은 류정한, 홍광호에 비해 기술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가사가 곧 대사라는 걸 가장 잘 이해하는 배우이고, <지킬앤하이드>에 익숙한 만큼 대사의 호흡에 맞춰 노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올해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성장했는데 이는 특히 지킬과 하이드가 동시에 부르는 ‘대결(Confrontation)’에서 도드라졌다. 이 곡은 테너와 바리톤의 음역대를 오가며 후반으로 갈수록 강한 임팩트를 줘야 했지만, 과거의 조승우가 유독 힘에 부쳐 했던 곡이기도 했다. 하지만 “뮤지컬배우 한지상을 ‘호루라기 연극단’으로 꼬셔서 전속 레슨선생님으로 모신” 결과 올해는 탁월한 강약조절, 부쩍 안정된 발성과 가창력으로 곡 자체에 담긴 기승전결을 관객에게 더욱 명확하게 전달해내며 에너지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지킬을 조합한 새로운 지킬
올해는 “신구의 조화”(신춘수 대표)를 화두로 내세운 만큼 새로운 지킬 김준현의 무대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현재 “초연 당시의 조승우를 보는 듯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일본극단 사계에서 5년간 트레이닝을 받으며 큰 무대를 경험해왔다. 특히 류정한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와 홍광호의 가창력, 김우형의 훈훈한 신체조건을 조합해놓은 듯한 그의 모습은 <지킬앤하이드>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민은 그동안 김선영, 소냐가 보여주지 못했던 루시의 새로운 면을 공략하고, 엠마 역의 조정은은 상대적으로 성량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그녀만의 현명하고 위트 있는 캐릭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지킬앤하이드>는 11월 30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샤롯데 시어터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