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을 삼켜 자석 심장을 갖게 된 여성이 철로 된 의수를 가진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뮤지컬 <줄리 앤 폴>은 황당해 보이는 이 이야기의 내레이터를 에펠탑에서 살아가는 쥐 나폴레옹으로 설정해 이 공연이 완벽한 동화임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나폴레옹은 샹송을 연상케 하는 낭만적인 넘버를 부르며 작품이 앞으로 다루게 될 파리라는 공간과 인물이 처한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한다. 상상과 약속으로 움직이는 모든 공연예술이 그러하듯, <줄리 앤 폴>의 승부도 여기서 갈린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동참할 것인가 아닌가.
이후 작품은 익숙한 캐릭터들과 에펠탑 건설이라는 사건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움직이는 주체적인 줄리와 자신의 한계 앞에서 고민하고 사랑으로 극복하는 폴은 보편적이며 매력적이다. “작업을 하면서 밥을 동시에 먹도록” 명령하는 자석 공장의 사장이나 “세느강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파리의 시장, 줄리의 능력을 확인한 후 그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서커스단장의 모습 역시 너무 익숙하다. <줄리 앤 폴>은 여기에 실제 흉물스럽다 외면 받았던 에펠탑 건설을 줄리와 폴의 러브스토리에 더해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로 확장해 증오의 멸시를 사랑과 낭만의 이야기로 탈바꿈시킨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김드리 작곡가의 음악이다. <줄리 앤 폴>의 넘버들은 왈츠와 탱고 같은 무곡을 본격적으로 사용한다. 무곡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경쾌한 템포의 곡들은 개인적 고민에도 여전히 긍정적인 인물의 성격을 부각한다. 작품 전체에 귀엽고 밝은 분위기가 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 한 아코디언과 통통 튀는 마림바의 특징적인 소리들은 아련함과 사랑의 설렘 같은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해낸다. 인물의 행동과 그들이 걷는 거리 등을 상상케 하는 것 역시 솔직하고 직설적인 가사가 더해진 20곡의 넘버들이다. “웅성웅성”이나 “찍찍” 같은 의성어들은 빈 곳을 알뜰하게 채우며 작품을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꾸민다.
이야기와 음악이 가진 낭만적인 정취는 파스텔 톤의 곡선 위주로 디자인된 장식적인 세트와 따뜻한 조명의 무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공연예술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공간의 표현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줄리 앤 폴>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소화된 시각적 구현은 음악적 상상력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줄리 앤 폴>을 무대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줄리 앤 폴>은 듣는 것이 최적의 관극 방법인 것은 아닐까. 작품의 많은 부분은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빚을 진다. 한정된 상황 안에서 더욱 빛나야 했을 연출적 아이디어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