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랑가>, 새로운 장르로 탄생한 콜라보레이션 (스테이지톡)

새로운 장르로 탄생한 콜라보레이션, Like
노래를 매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형식면에서 판소리와 뮤지컬은 참 많이 닮았다. <아랑가>는 뮤지컬과 판소리의 만남이라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판소리가 소리꾼의 능력 하나로 관객의 거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듯, <아랑가> 역시 상징적인 몇 가지의 오브제만으로 무대를 꾸미고 음악과 배우의 연기에 많은 부분을 내어준다. 극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창과 구음을 하는 도창이 등장하고,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여운이 짙은 음악으로 표현해낸다. <아랑가>는 판소리와 뮤지컬의 장점을 세심하게 골라 만든 새로운 장르인 셈이다. 그리고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다양한 국악기와 서양 악기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소리에 있다. 단 네 명의 연주자가 심벌부터 장구, 대금부터 소금, 콘트라베이스와 일렉베이스, 건반을 이용해 다채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스무 개가 훌쩍 넘는 악기들은 감정은 물론 인물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 묘사에도 탁월하다. 불규칙하게 퍼지는 종소리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개로왕의 심정을 담아내고, 고저가 다르게 쏟아지는 타악기의 소리들은 백제를 향해 달려오는 고구려군사를 구현해낸다. 건반의 멜로디 위로 비애를 담은 국악기가 감정을 증폭하며 서사를 견인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대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110분.
아름다움과 지루함 사이, Dislike
<아랑가>는 백제의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왕이 신하의 아내를 탐하고 아내는 정절을 지킨다는 설화의 큰 틀만을 취한다. 도리어 <아랑가>는 설화 속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욕망과 삶의 덧없음에 주목한다. 어릴 적부터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고, 왕이되 왕이 아닌 사내”라는 저주 속에서 살아온 개로는 그 중심에 있다. 그는 ‘왕국의 멸망’이라는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는 도미와 도림을, 악몽 속 평화를 찾아 아랑을 곁에 두려 한다. 도림은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도미와 아랑 역시 서로를 향한 도리를 배반하지 않으며 기꺼이 상처를 입는다. <아랑가>는 사건의 변화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함으로써 설화를 확장하며, 이는 배우가 표현해내야 하는 감정이 한없이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각 인물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극단의 상황에 있으며, 그들의 감정을 도와줄 소품은 최소화되었고, 감정을 대변하는 대사와 가사의 많은 부분은 은유와 상징으로 쓰였다. 여기에 조명과 동선을 이용한 연출이 더해져 <아랑가>는 한 편의 시조가 된다.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일수록 관객을 사로잡아 집중도를 높여야만 한다. 초반 몰입에 실패하면 작품에 대한 인상은 내내 ‘지루함’에 머무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