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더 넓은 세계를 위한 문 (스테이지톡)

1920년대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비극을 다룬 <위대한 개츠비>에는 ‘이머시브 공연’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이머시브(immersive)는 마치 사용자를 에워싸듯 무언가에 몰입된 상태를 말한다. 몰입은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모든 매체에 필요하지만, 시·공간의 한계가 분명한 공연예술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리얼리티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이 세계를 믿게 할 것인가. 가장 일반적이면서 기본적인 것은 극적인 사건과 빠른 전개, 다양한 감정이 담긴 이야기 자체다.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배우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관객에게만 들리는 것으로 약속된 ‘방백’이나 배우들의 동선을 무대를 벗어난 극장 전체로 확장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이 이 세계의 일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한다.
전통 위에 새로운 감각이 입혀진 이머시브 공연들은 주로 관객의 직접 체험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스로 컴튼의 ‘트릴로지 시리즈’나 <더 헬멧 Room’s Vol.1>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 관객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을 택한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처럼 배우와 관객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며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로 만들기도 한다. ‘이머시브 공연’의 대표로 소개되는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의 관람 자체를 자유롭게 열어놓는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캐릭터와 공간, 서사를 비롯해 작품을 구성하는 경우의 수를 최대로 펼쳐놓은 공간 안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낸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개츠비의 파티’라는 설정 안에서 움직인다. 관객은 이 파티에 초대된 이들이며, 개츠비 맨션의 관리인들의 안내에 따라 입장한다. 관객은 작품의 공기를 만드는 인물들로 존재하고, 이를 위해 배우들은 관객 사이를 누비며 상황을 이끈다. 배우들의 주도하에 스윙댄스를 추거나 노래를 함께 부르고 기차놀이를 하기도 한다. 파티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 관객은 배우를 따라 새로운 공간을 경험한다. 데이지의 옷을 함께 골라주거나 개츠비의 불안한 마음을 은밀하게 들으며 큰 줄기의 이야기 사이에 숨겨진 캐릭터들의 내면을 듣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관객의 선택에 의해 진행된다는 면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전통적인 공연예술의 형태를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머시브’라는 말 그대로 높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관객이 이야기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모든 관객이 동일하게 몰입할 수 있는 세계관이 중요하다. 가장 즉각적인 방식은 시각적 구현이며, <슬립 노 모어>가 6층 호텔 전체를 리모델링한 것 역시 관객이 어디에 있든 낯설고 기괴한 작품이 가진 정서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상과 소품 등 신경 쓴 흔적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완성도가 아쉽다. 배우의 가이드에 의해서만 다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어, 관객에게 주어진 자율성 역시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럼에도 <위대한 개츠비>가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문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1920년대 복장을 하고 공연장을 찾고, 작품은 하나의 이벤트로 인지되어 관객층을 넓힌다. 이머비스 공연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입문작으로는 탁월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