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미인>, 이야기가 된 노래 (스테이지톡)

이야기가 된 노래, Like
주크박스 뮤지컬은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만들기가 더 어렵다. 노래가 가진 익숙함은 언제나 득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곡을 배치해도 하나의 확장된 이야기로 꿰어내기에는 가사에 담긴 것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때문에 독립된 이야기로 완성되지 못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그 자체로 그냥 ‘주크박스’에 지나지 않는다. <미인>의 장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미인>은 신중현의 곡으로 만들었지만, 이들의 지향점은 ‘주크박스’가 아닌 ‘뮤지컬’에 있다. 작품의 배경은 신중현이 활발히 활동하던 60~70년대가 아닌, 30년대의 경성이다. 다수의 곡이 이유도 없이 ‘금지곡’으로 평가받던 때의 음악이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자유를 향한 더 큰 목소리가 되었다. 무성영화와 변사라는 설정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음악에 당위성을 주고,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한 청년의 성장기로 이어졌다. <미인>의 넘버들은 원곡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색을 지워냈지만, 작품 속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관객이 집중할 수 있을 정도에만 멈춘다. 신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당시의 시대상은 ‘커피 한 잔’과 스윙으로 편곡된 음악에서 느낄 수 있다. “낭만과 오락”을 노래하는 후랏빠 시스터즈는 서사를 견인하는 것과 동시에 뮤지컬의 쇼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독립운동가들의 암호가 된 ‘꽁초’나 다수의 조선인을 고문하고 살해한 미사오의 악몽으로 재탄생된 ‘인형’도 안무와 결합되어 세련된 방식으로 장면을 만들어낸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에 기여하는 강호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는 ‘아름다운 강산’이다.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이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 대신 만든 곡이다. 그동안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원 창작자를 향한 존경과 완성형의 극본을 본 적은 극히 드물다. <미인>은 그것을 해낸다.
초연의 한계, Dislike
<미인>이 독립적인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음악을 베이스로 한 만큼 극본상의 한계는 존재한다. 사건을 중심으로 연결된 장면은 빠른 전개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인물의 감정이 휘발되어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미인>에는 ‘성장’을 담당하는 강호 주위로 다양한 인물이 포진해 있다.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선 강산이 ‘늦기 전에’로, 의리로 똘똘 뭉친 강산이 ‘떠도는 사나이’로, 자신의 집안에 대해 알고 방황하는 병연이 ‘리듬 속의 그 춤을’로 각자의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감정이 아닌 관계의 깊이를 설명하는 연결고리는 약하다. 관객은 서로에게 각자의 에너지를 다 쏟아내는 이들을 보며 종종 갸웃하게 되고, 결국 비장한 최후를 위한 동력은 약해진다. 특히 초연의 물리적 한계는 매끄럽지 못한 장면 전환에서 드러난다. 잦은 암전은 자연스러운 정서의 흐름을 방해하고, 웅장한 언더스코어에도 불구하고 라이브가 아닌 MR 역시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 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미인>이 가장 한국적인 록으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기틀을 마련한 것만큼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