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편의 성장과 땀, Like
열일곱살 소년들이 “대박사건”을 외치며 쉬지 않고 무대를 휘젓는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발산하듯 이리 저리 빠르게 튀어 오르는 이들의 모습은 농구공을 닮았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불안의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들과 농구의 만남으로 밝고 건강한 성장드라마를 쓴다. 청소년기의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만화 <슬램덩크>나 <H2>처럼 <전설의 리틀 농구단>도 이 장르의 법칙에 충실히 따른다. 소극적이고 주눅 든 주인공이, 성공보다는 실패에 익숙한 팀이, 팀처럼 자신의 인생도 바닥을 친 코치가, 그리고 이들을 돕는 조력자가 있다. 왕따 같은 현실의 고민도 지난 시절의 잊지 못할 상처도 스포츠를 통해 이겨낸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익숙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종종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농구라는 팀 스포츠가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다. 코트 위의 공이 여러 손을 거쳐 하나의 골로 완성되는 과정은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친구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덩크슛은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며 새로운 시작을 돕는다. 서사만을 두고 봤을 때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굳이 뮤지컬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작품은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서 소홀해지기 쉬운 아이들의 감정은 음악으로, 농구가 가진 빠른 호흡과 다이내믹은 안무로 보완하며 전진한다. 여기에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배우들의 땀은 그 어떤 설정보다도 더 깊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보편적이거나 진부하거나, Dislike
보편적이라는 말은 진부함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모두가 겪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너무 익숙해서 클리셰로 다가온다면 아무리 현실이라도 깊은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보편적인 감정 안에서 개개인의 특수성이 약하면 관객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장드라마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전설의 리틀 농구단>도 인물의 설정과 서사를 이끄는 사건의 상황이 아쉽다. 학교에서는 왕따로, 집에서는 맞벌이 부모 밑에서 겪는 외로움으로 고민하는 수현이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란 어렵다. 수현이 만나는 세 귀신 역시 바다에 놀러갔다가 죽음에 이른다는 상황 역시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서사는 지극히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음악 역시 감정에 따라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르 이상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건강하고 밝다. 세대와 성별을 떠나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다. 다만 같은 이유로 작품이 지루하다 느낄 수 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건강함을 유지하되 작품 안에 긴장감을 더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