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awakening>)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화제작이다. 등장과 함께 토니상 8개를 휩쓴 화려한 수상경력 외에도 100년 전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2009년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2~3달 정도만 공연되고 시즌이 마무리되는 현재 뮤지컬 시장에서 6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공연된다는 점 등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관객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바로 김무열 조정석이라는 뮤지컬계 걸출한 ‘아이돌’ 두 배우의 출연이다. 나이 서른, 정확히 제 나이의 절반인 모리츠를 연기하느라 고민이 많다는 조정석을 만났다. 중간 중간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모리츠를 이해하고 슬퍼하다가도, 가장 좋아하는 이종격투기 선수인 효도르의 ‘러시안 훅’을 설명할 때는 손수 시연까지 해 보인다. 그가 사랑받는 것은 이래서다.
후기에 귀엽다는 평이 많다.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들의 귀여움을 다 조합해놓은 캐릭터 같다. (웃음)
조정석 : 브로드웨이 버전의 모리츠는 키가 크지만, 나는 짜리몽땅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웃음) 15살인 모리츠는 딱 내 나이의 반이다. 그래서 연습할 때부터 순수해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처음 손을 잡거나 어떤 광경들을 봤을 때의 기억을 되새기는데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7월 4일 본 공연을 시작했고,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연습할 때와 직접 공연을 했을 때의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조정석 : 한 달이 지나니까 공연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떻게 흘러가야 되는지 방향성 같은 것들이 내 나름대로 디테일하게 생겼다. 그리고 연습 때부터 가졌던 기대감, 설렘, 자부심 같은 부분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공연이 올라가고 난 이후엔 언제나 그렇듯 관객들의 반응이 늘 놀랍다. 멜키어(김무열)가 모리츠와 벤들라(김유영)의 영혼을 만나 다시 삶을 이어가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많이 우시더라. 그리고 그 장면 이후 마지막 곡인 ‘The song of purple summer’에서는 이름 모를 미소를 짓는다. 그런 관객들의 표정이 너무 놀라워서 내 집중을 흩트릴 때가 많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되는 작품이라,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른들은 머리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조정석 : 나도 그랬다. 연습할 때 나이가 나이인지라 호흡이 자꾸 밑에 있어서 따라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람은 마흔이 되든 환갑이 되든 순수함을 절대 놓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15살의 모리츠를 표현하기에 충분한 순수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예전 추억과 기억들을 다 끄집어냈다. 그래서 평상시 생활도 유치해지고 어려졌다. 하다못해 요즘은 여드름도 난다. 대표님이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눈빛이 더 어려졌다고 하시더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자살의 이유가 궁금해서 모리츠에 끌렸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찾았나.
조정석 : 모리츠를 연기하면 할수록 이 아이는 너무나 심하게 여리다는 걸 느낀다. 옆에서 누가 뭘 적으면 그걸 비슷하게라도 어떻게서든 적어내 그 열등감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그게 그 아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니 중간고사를 패스한 게 얼마나 좋겠나. 그런 아이가 어른들에 의해 낙제를 당하게 된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 낙제 자체는 절망이지만 모리츠에겐 부모님이 계시니까. 뭐 잘못하고 힘들고 하면 그냥 부모님 목소리가 듣고 싶은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런 마음에 모리츠도 아빠에게 얘기했을 텐데 묵살당해버리고 가보어 부인에게도 거절당하면서, 그때 큰 타격을 입은 것 같다.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여기까지는 다 왔는데, 자살하기 직전의 감정은 아직도 찾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왜 모리츠는 멜키어가 아닌 가보어 부인에게 편지를 썼을까. 오히려 친구가 더 편할 텐데.
조정석 : 얘는 그 순간까지도 절친한 멜키어에게 열등감이 있는 거다. 그래서 자기한테 너무 멋지게 보인 멜키어 엄마 가보어 부인한테 편지를 썼는데, 역시나 모리츠의 문제를 하찮고 가치없는 얘기로 치부해버린다.
이후 모리츠는 일세(김지현)에게 “그래라고 한마디라도 할걸”이라고 말하고 죽음을 택한다. 그 대사는 스스로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인 것 같기도 한데.
조정석 : 일세 입장에서도 그럴 거다. “니가 깨어날 때쯤 난 어느 쓰레기더미 위에 누워 있을꺼야”라는 일세의 말을 듣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만, 결국 붙잡지 못한다. 그 이후 다시 혼자 있는 자리에 돌아와보니 역시나 뭘 해도 안 되고, 그 어떤 것도 붙잡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마지막 일세가 떨어뜨리고 간 꽃을 잡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거 하나만큼은 꼭 잡아야지, 라는 생각인 거니까.
그렇게 자살하는 모리츠는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다.
조정석 :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머리가 커질수록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서른이고, 내 주변에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걸 보고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죽음이 너무 두렵다. 그래서 조정석이 연기하는 모리츠는 두려움이 많이 실린다. 그런데 “나도 천사가 될 거야”라는 대사가 어느 순간 들리더라.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대상으로 천사를 생각하는 모리츠에게 그 대사는 굉장히 희망적이라고 느꼈고, 그 마음이 마지막 자살을 하려는 멜키어를 살리는 힘이기도 하다.
열등감도 많고 주눅 들어 있는 모리츠와 달리 당신이 가진 이미지 중에는 자신만만함이 있지 않나. 자신과 다른 모리츠를 표현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조정석 : 모리츠는 순발력이나 생각의 변화들이 훨씬 더 느리고 불안하고 경직된 인물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템포 혹은 반 템포 느리게 연습했고, 그러다 보니 모리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1차원적인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얘기를 한다. 예를 들어 (김)무열이가 “형 밥 먹자”라고 하면, 바로 대답해도 될 걸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고 “음, 그럴까”라고 한다. 그러면 무열이가 “싫은 거야 좋은 거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래서 실어증에 가까운 정신박약이라는 진단이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런 것 보면 모리츠가 너무 답답하고 바보 같다. 내 친구였으면 “야, 어깨 펴, 어깨 펴라고! 가슴 활짝 열고, 어깨 올리고!”라고 해주고 싶다. (웃음)
며칠 전 커튼콜에 앵콜곡이 생겼다. ‘Totally Fucked’는 모리츠가 죽은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부를 수 없다. 그 곡을 앵콜로 부르는 데 어떤가.
조정석 : 커튼콜이 바뀐 지 얼마 안 됐는데 얼마 전 부르면서 진짜 미칠 것 같았다. 극에서도 무대 뒤에서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봤다. 근데 사실 연출방향은 드라마에서 나와 관객들과 같이 즐겨야 되는 건데, 그게 잘 안 됐다. 그러면 안 된다.
이 작품은 체력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감정적으로 많이 힘든 것 같다.
조정석 : 목 끝까지 감정이 차올라 노래랑 대사를 못할 정도였던 적이 있었다. 일세를 만나 어릴 적 멜키어, 벤들라와 함께 놀았던 때를 기억하며 ‘Blue wind’를 들을 때였다. 그때는 너무 좋았는데, 현실은 절망적이고 얘는 또 그 순간에 숙제 얘기를 하는 거다. 같이 가자는 일세에게 “안돼”라는 대사를 해야 되는데, 안 나오는 거다. 진짜 죽겠더라. 되게 짧은 대산데 세상에서 그 대사가 제일 힘들었다. 자살하고 분장실에서 감정이 너무 복받치는 바람에 계속 울었다. 그날은 집에 갈 때까지 너무 힘들었다.
결국, 모리츠는 스스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실제로도 그런 상태에 빠진 적이 있나.
조정석 : 2000년 재수할 때, 뭘 해도 안 되고 어딜 봐도 안보이고 고개를 숙여도 힘들었다. 친구들은 다 대학을 갔고, 나는 음악 한다고 준비하던 차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 대학에 입학해 다시 열심히 살고 있던 때 친동생처럼 지냈던 조카가 사고로 죽었다. 그때 정말 모든 세상이 어두워 보이고, 세상에 욕하고 싶고 그랬었다.
어떻게 이겨냈나.
조정석 : 친구들의 힘이 컸다. 한 달을 넘게 매일 술 마시면서 방탕한 생활을 했는데, 엄마가 늘 애들한테 전화했다. 그러면 친구들이 다 돌아다니면서 찾으러 다니고, 집에 갖다놓고, 충격 받으라고 동영상으로 다 찍어서 보여주고 그랬다. 친구들이 끝까지 케어해줬다. 내가 친구복이 많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 했던 소년이었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나.
조정석 : 교회에서 연극 연출도 하고 연기도 했었다. 그런데 재수할 때 교회 전도사님이 네 재능은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당시는 전도사님 말을 잘 들었다. (웃음) 그 얘기를 듣고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연기를 해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입시레슨을 받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가서는 진짜 ‘열심’이라는 단어를 얼굴에 붙이고 다닐 정도였다. 볼엔 열심, 이마엔 최선, 가슴엔 인내. (웃음)
데뷔한 지 6년, 뮤지컬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지만 김혜수의 제안으로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에도 출연할 뻔했었다고 들었다. 그 이후 다른 매체에서의 기회는 없었나.
조정석 : <고고70>이랑 몇 개 있었는데 못했다. 기회가 왔다고 덥석 잡는 게 어찌 보면 어리석은 것 같고, 안 잡았던 내가 지금 어리석을지도 모르지만 기회는 또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작품들은 운이 안 맞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보겠다. <헤드윅> 할 때 뽀얀 피부 덕에 붙은 ‘뽀드윅’의 피부 관리는 뭔가. (웃음)
조정석 :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관리 안 한다. 공연 끝나고 보면 다른 배우들은 분장실에서 막 뭐 바르고 하던데 나는 전혀 안 바른다. 무열이가 바르라고 로션 같은 거 줘도 손에 다 발라버려서 혼난다. 근데 팔자주름이 생겨서 이제는 좀 해야 될 것 같다. 예전에 선물로 받은 화장품들을 이사 오면서 다 가지고 왔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웃음) 아, 엄마가 나이트로션을 줬는데 그건 좋더라. 그거 하나만 바르고 자면 다음날 아침 피부가 달라져.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