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비딕>, 바다의 노래를 들어라 (텐아시아)

탁 트인 수평선과 모든 것을 받아줄 것만 같이 너른 품의 백사장, 적당한 박자로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깊고 푸른 물. 무언가에 지친 이들은 바다에 간다. 이스마엘(신지호)도 자동차 경적소리와 긴박한 엠블런스 사이렌, 두서도 없이 귀를 때리는 도시의 소음을 피해 바다에 갔다. 지쳤고 외로웠고, 그래서 위로가 필요했다. 바다는 그런 이스마엘에게 친구를, 즐거움을, 위로를, 그리고 슬픔을 줬다. 이스마엘은 담배와 함께 “머릿속을 나눠주는” 작살잡이 퀴퀘그(KoN)를 만나 고래잡이 배 피쿼드호에 승선한다. 그리고 그는 그 작은 배에서 편견이 없고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항해사의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느끼고, 상처 입은 선장의 분노를 겪으며 감정의 지층을 하나씩 쌓아올려간다.
대자연이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손길 7
뮤지컬 <모비딕>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야기할 구석이 많은 작품이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액터-뮤지션이라는 생소한 장르가 주는 신선함이다. 연기와 노래, 안무와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역할을 소화해내는 뮤지션이자 배우들의 2시간은 쉴 새 없이 관객의 눈과 귀를 잡아끈다.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친해지는 계기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잼으로 표현된다. 바이올린의 활은 퀴퀘그의 작살이 되고 첼로의 핀은 고래뼈가 되어 선장 에이헙(황건)의 다리를 감싼다.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 경적소리와 같은 효과음들은 각각 별개의 음악이 되어 연주로 공간감을 부여하고, 100석짜리 작은 공연장은 육중한 더블베이스의 음색에 현을 퉁기는 소리까지 전하며 흰 고래 모비딕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특히 <모비딕>은 공연창작자 지원프로그램인 ‘CJ 크리에이티브 마인드’에 선정된 이후 지난 1년간 2차례의 공개워크숍과 트라이아웃 공연을 통해 작품을 완성시켜나갔다.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제작과정을 통해 창작뮤지컬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연일 매진사례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스토리에 있다. 형체를 좀체 알 수 없는,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모비딕’을 통해 <모비딕>은 사라져버리고 있는 가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자존심과 한계를 향한 무모함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요가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방식을,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도전을. 망망대해에서 의지할 이라고는 단 여섯 명뿐인 이 작은 배 한척은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사회를 재현해내고, 공포와 두려움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믿고 같이 이겨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의 모든 추억을 바다에 묻는다”라 얘기할 수 있는 열정까지 놓치지 않는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는 미숙하다. 에이헙 선장역의 황건을 제외하고는 전문적인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미숙함이 주는 계산되지 않은 진짜가 피쿼드호 갑판에 있다. 벌게진 콧등과 친구를 잃은 슬픔에 뒤집어져버린 목소리, 그 순간 무대 위에는 진짜 이스마엘뿐이다. ‘동화된다’는 단어의 뜻이 온 몸으로 와 닿을 <모비딕>은 8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