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딩 싱어>, 사랑의 폐품은 조심하세요 (텐아시아)

로비(황정민)는 결혼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하는 ‘사랑의 화신’ 웨딩싱어지만, 정작 그의 약혼자 린다(류승주)는 “우리에겐 사랑 따위 없었어”라는 편지 한통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파혼 당한 로비는 웨딩케이크에 장식되어 있는 신부인형을 몰래 훔쳐다가 외로이 품고, “누가 날 좀 죽여줘” 같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혼자 청승을 떤다. 방에서 뛰쳐나와 다시 노래를 부르러 나간다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남의 결혼식장에서는 맥도너라는 이름의 신부를 맥도날드로 바꿔 부르고, ‘사랑의 폐품’을 열창하다 쓰레기통에 던져진다. 그런 그에게 며칠 전 린다를 위한 사랑의 테마를 함께 만들던 줄리아(방진의)가 찾아와 쓰레기통에 숨어 있던 로비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로맨틱 코미디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남자주인공은 바보스럽지만 멋지고, 다른 사랑을 하던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과 티격태격 하다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법칙. 뮤지컬 <웨딩싱어>(The Wedding singer)도 이런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로비가 부르는 노래는 흥겨우면서도 마지막 여운을 남기고, 줄리아는 울면서 “안녕, 난 줄리아 굴리아야”라고 인사하기 보다는 웃으며 “안녕, 난 줄리아...하트야”라고 인사하는 것을 택한다. 그러나 뮤지컬은 스토리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주객전도, 더불어 실종된 80년대
한국초연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뮤지컬 <웨딩싱어>는 많은 부분에서 삐걱거렸다. 특히 로비와 줄리아가 서로에게 물드는 수많은 공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데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줄리아가 일하는 다이아몬드 홀, 로비의 집 외에도 로비밴드가 다니는 각종 행사장과 글렌(이필승)의 회사, 홀리(김소향)가 토요일마다 가는 클럽까지 수십 개의 공간이 눈앞에 실제로 펼쳐지면서 정작 프러포즈를 위해 라스베가스까지 날아간 로비의 진심엔 큰 힘이 실리지 못했다. 극은 산만해졌고, 무대전환 역시 급박하게 이루어지면서 급기야 무대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더불어 어지러울 정도의 안무를 매회 원캐스팅으로 소화해내는 앙상블은 무대전환에 필요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장치처럼만 보여 안타까웠다.
또한 “80년대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에게는 미안하지만, 80년대는 무대막 위로 투영되던 갤러그와 팩맨 게임에만 존재했다. 글렌이 벽돌만한 핸드폰을 들고 나오고 아놀드 슈가, 티나 털어 등 이미테이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갤러그와 팩맨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그려내지 못했다. 거기에 다른 라이선스 작품에서 플러스 요인이 되곤 하는 잘 번역된 대사와 가사는 오히려 80년대 사랑을 그리는 <웨딩싱어>에 시대감을 지워버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황정민과 박건형이라는 스타가 가는 해를 유쾌하게 정리해준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황정민이 노래하고 춤을 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함이 없다. 그동안 <쓰릴 미>, <스위니 토드> 등의 작품으로 명확한 취향을 세련되고 아찔하게 만들어냈던 제작사의 감각이 퇴행해버린 듯 해 아쉽다. 뮤지컬 <웨딩싱어>는 2010년 1월 31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