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정체성의 결합이 인간이며, 그리하여 개인은 유일무이한 하나의 세계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프랑스에서 활동한 폴란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가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고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탄 거대한 위인이 아니라 ‘이방인’, ‘여성’, ‘과학자’라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뮤지컬이 가장 공들여 표현하는 것은 ‘과학자’로서의 마리다.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라듐의 유해성과 가능성을 밝히려 평생을 바친 마리의 삶은 성공의 희열 대신 과정의 실패로 가득하다.
이성의 영역인 과학은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마리 개인의 관심사다. 그러나 뮤지컬은 이를 개인의 몫으로만 남기지 않는다.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확한 데이터가 대체 불가한 증명이기에 실험에 몰두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마리가 자신이 맡은 바에 솔직하고 단호하며 책임감 있는 인간이라는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구축한다. 동시에 ‘이방인 여성 과학자’라는 복합적 정체성이 갖는 절박함도 드러낸다. 파리에서 태어난 남성 피에르는 라듐의 유해성이 발견되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면 돼”라고 말하지만, 마리는 위험을 모두 알고도 자신의 몸을 실험체로 사용한다. 여성이자 이방인인 마리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탓이다. 작품은 일상의 차별을 드러내고 이를 해결하려는 마리의 선택과 행동으로 개인을 뛰어 넘어 소수자의 이야기를 만든다. 서로 다른 위치의 마리와 안느도 ‘여성’과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들은 경제와 지식이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여성’에 대한 편견도 훌쩍 뛰어넘는다. 마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그를 응원하며 지지하는 이들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 이들이며, 라듐엔젤스의 사건이 더욱 긴밀해진 것도 느슨한 연결 덕이다. 개인의 욕망은 사회와 인간 전체로 확장되고, 각자의 세계는 이렇게 만난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도 마찬가지다. 인물들은 제 삶을 살아냄과 동시에 라듐이라는 소재를 통해 모두 연결된다. 라듐은 ‘오래된 규칙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았던 것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원소이자 보편의 삶을 대변하는 존재로 상징성을 갖는다. 음악은 탄탄하게 쌓아올린 서사 위에서 인물을 부드럽게 잇고 감정을 증폭한다. 회전무대는 극과 극의 입장과 태도가 생각보다 가깝게 위치하고 있음을, 주기율표를 이용한 조명은 ‘모두에게는 제 자리가 있다’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뮤지컬은 통합된 이미지를 통해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타인과 잇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말한다. 160분 내내 “내 이름을 찾고 싶어”라 외친 <마리 퀴리>는 배우의 이름을 칠판에 적는 커튼콜 퍼포먼스로 이 평등의 방법론을 현실로도 가져온다. 공연을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면, 작품이 관객이 닿을 수 있는 지점을 넓게 펼쳐내며 그들을 무대에 함께 세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정답을 담아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