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에너지는 어떤 물체가 그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기만 해도 운동에너지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하지만 연극과 영화가 뮤지컬로 옮겨지는 과정은 녹녹치 않다. 상대적으로 시각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영화가 뮤지컬이 되는 과정은 보다 순탄하지만, 같은 무대언어이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인원으로 진행되는 연극이 뮤지컬로 탈바꿈하는 데는 연극을 만들던 순간보다 곱절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오늘 소개하는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는 2년 전 공연된 <난중일기에는 없다>라는 연극을 토대로 만든 ‘역사왜곡 코믹뮤지컬’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7년, 이순신(임기홍)은 조정 대신들의 모략에 의해 투옥당한 후 권율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명받게 된다. 이순신이 권율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왜군무사 사스케(함승현)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생포되면서 뮤지컬은 시작된다. 사스케는 적장의 목을 가져오면 사랑하는 여인을 내어주겠다는 영주의 명을 받아 조선에 들어온 인물이다. 함께 이동하던 중 명나라 군인들에게 겁탈당할 뻔한 막딸(유정은)을 사스케가 구해주면서, 국적과 신분, 나이를 초월한 세 남녀의 여행이 펼쳐진다. 그들은 밤만 되면 ‘요오코’를 외쳐대는 사스케 때문에 싸우기도 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하는 그에게 감정을 토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서로의 정을 나누고, 결국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기꺼이 내어주기에 이른다. 그렇게 <난중일기>에도 역사책에도 없는 3일간의 기록은 KBS <다큐멘터리 3일> 마냥 담담하게 그들을 따라가며 관객들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무엇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애잔한 국악기 선율과 현대적인 리듬을 잘 버무려 극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던 <형제는 용감했다>에 비해, 이번 장소영 작곡가의 <영웅을 기다리며> 넘버들은 수많은 연극대사들이 가사들로 담기며 상대적으로 음악도, 대사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광화문 한복판에 복제된 듯 근엄하게 서있는 이순신을 인간적이며 한편으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만든 캐릭터는 발군이다. 하나뿐인 식량 고구마를 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나, 자라등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며 거북선을 고안해내는 장면 등은 장군 이순신이 아닌, ‘남자의 자격’에서 튀어나온 듯한 중년 아저씨 특유의 귀여움을 선보인다.
연극의 원작자인 이주용 작가는 주제의식도, 관객들의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원군으로 들어온 명나라 군사가 조선 백성들에게 저지르는 만행이나, 조선의 부엉이가 왜 8000번 울어야만 잠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쉬이 넘길 수 없는 감정의 진폭을 남긴다. 부엉이는 어둠이 내리면 마을의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하나하나를 살피고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가 ‘한 맺힌 기도’를 8000번에 걸쳐 하늘에 고한다. 부엉이는 ‘염원의 통곡소리’로, 이순신은 <난중일기>로 세상의 진실을 전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그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는 대학로 해피씨어터에서 오픈런으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