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카지>, 배우 고영빈 (텐아시아)

최근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라카지>의 조지는 예를 들면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 같은 인물이다. 조지는 클럽 ‘라카지오폴’을 전설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자신보다는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새로운 시도를 할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리더이자 좋은 아빠, 그리고 좋은 남편. 방귀남과 조지에게 차이가 있다면 아내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점뿐이다. 뮤지컬로 제작된 지 30년 만에 처음 국내에 소개되는 이번 작품에서 거대한 울타리를 자처한 이는 그동안 <바람의 나라>, <컴퍼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이하 <스토리>) 등에서 믿음직한 연기와 훈훈한 비주얼로 14년째 무대를 지켜온 고영빈이다. 함께 캐스팅된 남경주가 관록의 무대를 보여준다면, 고영빈은 백일몽 같은 환상과 현실이 오묘하게 뒤섞인 무대를 선보인다. 실제로 만난 그는 마흔에 만난 <라카지>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좋은 사람을 탄생시키며 서서히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는 캐릭터와 함께 성장한다.
2년 전 뉴욕에서 <라카지>를 직접 봤다고 들었는데 어땠었나.
고영빈: 2010년에 미국에서 한 1년간 쉬었던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본 공연이 <라카지>였는데 당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20년을 함께 산 부부로 설정된 조지와 앨빈을 정말 예순을 넘긴 배우들이 하고 있었다. 머리에 흰 칠 같은 걸 안 해도 될 정도로 딱 그 나이였고, 그 연륜이 무대에서 보였다. 공연을 보면서 우리나라 관객들도 다양한 공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큰 안목과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안 되겠지’라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한국에 왔는데 이걸 한다는 거다. 처음엔 걱정이 많이 됐었다.
어떤 점이 가장 걱정이었나.
고영빈: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가장 컸고, 그 다음엔 내가 조지를 한다는 거였다. 이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니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잡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해서 아름다운 결말로 이끌어내는 게 조지다. 무대에서 크게 빛나지는 않지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일념 하에 자기를 던지는 사람인데 그런 여유가 나한테는 없다. 얼마나 인생의 고통이 심했으면 이건 다 해프닝이야,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나.
무대에서 연기한 지 14년째인데 여전히 무대가 어렵나보다.
고영빈: 난 굉장히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순간 대처능력이 미흡해서 관객과 만났을 때 분위기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래서 좋게 얘기하면 진행되는 과정에서 좋아지면 좋아졌지 절대 망가지지 않지만, 그건 또 내가 첫 공연에서는 100%를 못 보여줬다는 얘기와도 같은 거니까.
소위 로딩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우라는 얘기인데, 이번 첫공연은 어땠나.
고영빈: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굉장히 편안했다. 그동안 항상 점잖고, 고뇌하고, 울고, 까칠하고, 무표정한 캐릭터를 많이 해서 무대에서 능청을 떨어본 적이 없었는데 의외로 하나도 안 떨었다. 그 편안함이 좀 과한 에너지가 되진 않았나 싶을 정도로. 뉴욕에 다녀오고 나서 <스토리>가 첫 복귀작이었는데, 철이 든 건지 <스토리>랑 <라카지>는 첫 멘트부터 긴장을 잘 안하게 됐다.
조지와 앨빈에게는 롤이 많은데, 공연을 보다보니 스스로 꿈꾸는 좋은 남편, 아빠, 어른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영빈: 나한테 가정이 있다면 이런 가정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게 그대로 <라카지>에 있다. 단지 앨빈이 남자일 뿐이다.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크게 사업을 하시다가 안 좋아지셔서 어릴 때 헤어지고 못 만났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 상상하는 이미지가 있다. 친구 같고, 특별히 간섭하지 않고, 풀어주는 것 같지만 살면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거. 아이가 생기면 나는 걔한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는 아빠이고 싶다. 못해줘서 가슴 아픈 아빠는 싫다. 부인 역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가정 때문에 희생하는 여자는 싫다. 내 옆에서 다 누리고 사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20년을 함께 살았는데 여전히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그 편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편이라서 솔직히 앨빈이 좀 부러웠다. (웃음)
고영빈: 그건 대본이 그렇게 쓰여 있어서다. (일동 웃음) 예전에 고궁뮤지컬 <대장금>에서 민정호를 했었는데, 조지를 보면서 민정호 생각이 많이 났다. 민정호는 장금이를 위해서 보이지 않게 남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서포트를 다 하는 인물이었다. 조지가 약간 살살 구슬리는 잔머리가 있긴 하지만, 정말로 상처 안 주고,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도 안 되는 것들은 운명에 맡기는 사람이다. 여기 숨기고 저기 숨겨서 말 보태기 보다는 딱 진심만 보여주는 그런 남자, 남편,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다현-영빈 페어는 20년이 아니라 1년쯤 산 부부 같아 보였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데 어떻게 그런 로맨틱한 페어를 만들어냈나. (웃음)
고영빈: 사실 나도 그렇고 (김)다현이도 굉장히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과묵하다. 그래서 처음엔 어떻게 얼굴 보면서 연기하지? 혹시 눈을 피하진 않을까? 그랬는데 다현이도 그랬을 거다. 천천히 시작된 것 같다. 하루에 인사 한 마디 하다가 어느 날부턴가는 ‘밥 먹었어?’를 묻게 되고, 그 다음에는 ‘뭐 먹었는데?’가 되고, ‘맛있었어?’까지 물어보게 되면서 디테일하게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거다. 밥 먹으러 가면 꼭 전화해서 어딨냐고 찾게 되고, 무슨 자리가 있어도 서로 다현이가 있는지, 내가 있는지 물어보고 있으면 가고. (웃음) 첫공연 끝나고 툭 고맙다, 소리가 나올 수 있던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눈빛은, 눈빛은... 공연 할 때마다 그런다. <스토리> 할 땐 뭐 안 그랬나? 앨빈을 그렇게 쳐다본다고. (웃음) 내 눈이 좀 그렇게 생긴 것 같애. 근데 난 눈에서 모든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 눈을 안 보면 연기를 못 한다.
조지는 판타지로 보일수도 있는 캐릭터고, 특별히 부각되지 않아서 관객이 알아차리기에도 쉽지 않다. 그런데 <스토리>의 톰도, <라카지>의 조지도 어딘지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결국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더라.
고영빈: 제 성격이 그렇다고 그러면, 재수 없죠? (웃음) 나는 (김)호영이나 (정)성화처럼 쇼맨십이나 그런 연기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심을 다 하고, 그 진심을 대본에서 찾아내는 것뿐이다. 조지의 경우엔 롤모델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소수자지만 자기 잘났다고 사회에서 큰 소리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멋지게 산다. 조지는 일단 당당해야 한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고, 그래서 더 일반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을 거다.
민정호와 조지 같은 남자가 좋다고 했는데, 실제 본인의 연애스타일은 어떤 편인가.
고영빈: 실제 그렇지 못하니까 결혼을 못했겠지. (웃음) 난 노후가 굉장히 기대된다. 젊어서는 뭘 해도 상관이 없다. 조지도 처음부터 그랬겠나. 20년 살다보니 서서히 모든 게 갖춰지고 여유도 생긴 거다. 사랑은 추억과 역사가 쌓이면서 완성되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피해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보니 연애를 못하는 것 같다. 다행히 그런 생각들이 좀 흔들리는 시기이긴 한데 언제쯤이면 내가 원하는 세팅대로 가정을 이룰 건가 싶긴 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혹은 꿈꿔온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서 배우가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조지를 만나면서 인간 고영빈에 대한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고영빈: 분명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그 몇 십 년의 시간과 아픔을 다 이해하고 알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내 사랑이 좀 더 커진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이해와 배려를 기본으로 배운다. 그런데 그걸 그동안 배워서 알았다면 지금은 사랑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 사회에 공존하는 한 인간으로, 내가 좀 더 넓고 큰 사람이,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뉴욕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인간 고영빈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가기 전 인터뷰들을 보면 스스로 옭아매는 스타일로 느껴졌었다.
고영빈: 타고난 성격이긴 하다. 오히려 디테일한 것들은 신경도 안 쓴다. 먹는 거, 입는 거, 꾸미는 거. 우리 팬들이 “오늘도 교복 입고 오셨네요”라고 얘기할 정도니까. 그런 게 귀찮다. 근데 일,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남들은 귀찮아서라도 안하는 10년 계획을 한 달에 한 번씩은 짜는 것 같다. (웃음) 하고 싶은 공부도,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이러다 지치면 어떡하지 싶을 정도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는 게 삶의 이유인건가.
고영빈: 어떻게 보면 자격지심일수도 있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나 이런 거 왜 안 배웠지? 왜 이런 거 모르고 살았을까? 싶은 게 너무 많다. 스물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그게 뮤지컬이었다. 어릴 때 문화적 혜택 같은 걸 거의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 뮤지컬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었다. 내가 이렇게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 하지만 무대에서 연기하려면 많은 감성들이 필요한데 난 그런 걸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다. 그냥 열심히 나한테 쏟아 부어준 사랑들이 지금 내가 무대에서 하는 연기의 전부다. 그래서 성인이 되서 그것도 서른이 되서 외적인 것들을 채우려고 하다 보니 할 게 너무 많다. 연기, 무용, 노래, 미술, 피아노, 작곡도 하고 싶고. 말도 안 되게 없는 기본들을 내가 다 채워서 무대에서 짜잔! 하고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언제 될까, 그런 욕심들로 10년을 살았다. 서른에서 마흔까지. 그래서 더 끊임없이 공부하게 되고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러니까 연애는 뒷전이고, 연애 시작하면 3개월 후에 다 도망가고. (웃음)
자기의 영역이라는 게 있지 않나. 줄곧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고, 인정받는 자리임에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나.
고영빈: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남들보다 하나 더 타고난 재능으로 하는 것 같긴 하다. 근데 나는 자존심도 되게 세고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게 다 좋아 보인다. 나보다 못난 사람이 없다, 세상에. 그러니까 힘든 거다. 나는 어디에다가 기대야 되는지. 그래서 내가 뭘 많이 갖고 있으면 되게 행복하다. 아주 어릴 때는 턴 한 바퀴가 안됐던 게 어느 날 무대에서 되면 아무도 몰라줘도 행복했다. 근데 그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되거든. 그런 것처럼 살면서 돼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밀리고 있는 느낌이라 조급하다. 돼야 하는 것들을 빨리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뿐이다. 박진영이 그랬나? 자기가 제일 잘할 때가 제일 좋다고. 난 그 말 100% 이해한다. (웃음) 설령 그게 관객 코드와도, 관객 컨디션과도 안 맞아도 내가 준비한 게 무대에서 100% 되면 제일 뿌듯한데, 그게 안 된 상태에서 누가 이상하다 그러면 줏대 없이 흔들린다. 그게 힘들다.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인데, 중요한 시점 때마다 훌쩍 떠났었다. 데뷔 후 일본 뮤지컬 극단 ‘사계’의 단원이 됐고, 한참 많은 작품을 하던 2010년엔 뉴욕에 갔다.
고영빈: 그때 마침 1년 놀고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돈이 있었다. 그래서 갔고 정말 통장 잔고 제로로 왔다. (웃음) 2009-2010년에 작품을 계속 했었는데 더 이상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제의가 계속 있었는데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못하겠다고 전화 다 돌리고 그 다음날로 유학원 가서 알아보고 보름 만에 비행기를 탔다. 가서 3개월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어학원 가고, 돌아다니고, 공연보고, 스무살씩 차이나는 애들이랑 놀고 진짜 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슬슬 돈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연기 레슨이나 공연요청들이 들어왔다. 거기 애들은 작품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데, 난 돈을 벌기 위해 공연을 하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싫었다. 욕먹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사람이 힘들다보면 모든 게 다 부러워 보인다고, 당시엔 나도 그런 생활 하다가 브로드웨이에서 뭐라도 하나 맡아서 금의환향할지 누가 아냐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결국엔 돌아왔네.
고영빈: 고향은 고향인지라 오라는 소리에 ‘아,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웃음) 다행히 그곳에서의 시간 덕분에 욕심도 많이 버리게 되고 편안해졌다. 별 거 없다, 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된 것 같고. 그러다보니까 옛날하고는 다르게 나라는 배우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느낀다. 오래된 팬 중에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줬는데, 옛날에는 고영빈이 무대에 서있는 모습, 그 비주얼을 좋아서 쫓아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이 배우가 무대에서 뭘 하는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나도 그 얘기는 되게 좋더라. 마음에 여유가 좀 생겼고, 사람들도, 공연도, 마인드도, 모습도 좀 바뀌었고, 나도 늙었고. (웃음)
마흔이라는 나이도 그 변화의 한 축이지 않을까.
고영빈: 내가 아들 장미셀보다 멋있을 거야! 이런 욕심 안 부리니까. (웃음) 옛날에는 상대로 붙는 남자배우가 있으면 그 사람보다는 멋있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이왕 할 거면 멋있어야지. 근데 이제는 앨빈이 제일 아름다웠으면 좋겠고, 내 아들이 제일 멋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러니까 좀 편해진다.
<라카지>에 ‘The best of times’라는 곡이 있는데, 당신에게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고영빈: 당연히 지금이다. 앞으로 올 날에 대한 기대를 하지만 그건 올지 안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게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그쪽만 쫓아가다보면 힘들어진다. 이 인터뷰 이후에 배우의 가치가 뚝 떨어져서 인터뷰를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순간도 행복한 순간인거다. 지금 이 순간이 항상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깨달은 지 얼마 안 됐다.
행복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인간 고영빈과 배우 고영빈이 맞닿기 시작한 느낌이다.
고영빈: 앞으로 더 좋아질 거다. 서른에서 마흔까지 그렇게 머리 쥐어짜고 왔으면 그걸로 족한 것 같고, 배우로서도 인간 고영빈으로서도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렇다면 인간 고영빈과 배우 고영빈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 것 같나.
고영빈: 아우, 글쎄. 나도 좀 알려줘. (웃음) 그거 하나는 확실해졌다. 예전에는 내가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시간을 다 털어서 해야 되는 것처럼 느꼈었는데 이젠 그냥 틈틈이 취미 생활하듯 끊임없이 호기심을 채우면 된다는 걸. 그렇게 채워가는 삶을 살 거고, 그래서 더 풍족해지는 삶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인간 고영빈이 행복하고 풍족하면 무대 위에서의 고영빈도 행복하고 풍족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