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후퇴는 없다 (텐아시아)

나팔소리가 깨우는 건 잠든 군인만이 아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늙고 병든 알론조 키하나는 용맹스런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되고, 돈키호테를 만들어낸 세르반테스 역시 성당을 담보로 수도원에 세금을 징수한다.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도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오”라는 대사에 움찔하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웅장한 나팔소리로 시작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는 그렇게 잠자고 있던 모두를 깨운다. 400여 년 전 출판된 1605년 작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한 <맨 오브 라만차>는 1965년 뉴욕에서 제작된 이후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극중극의 형태로 세르반테스의 어두운 현실 안에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그리는 이 작품은 2005년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국내 처음 소개되었으며, 2010년 현재 4번째 재공연을 진행 중이다.
천년이 흘러도 유효할 이야기 9
꿈은 누구나 꾼다. 하지만 <맨 오브 라만차>는 어떠한 순간에도 굽히지 않는 용기와 실천이 꿈을 꾸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무거운 창 때문에 뒷걸음질을 쳐도, 가진 모든 돈을 집시에게 빼앗겨도 후퇴하지 않는다. 오직 그에게는 신념과 정의를 위한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허황된 기사놀이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의 묵직한 용기는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러한 <맨 오브 라만차>의 가치는 극중극인 ‘돈키호테’의 결말에서 잘 드러난다. 결국 현실에 무릎 꿇고야 마는 알론조의 모습으로 끝이 났던 이야기는 다시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알돈자의 고백으로 변화하고, 함께 극중극을 만들어나간 지하 감옥의 죄수들에게로까지 전해지며 새로운 라만차의 기사들을 만들어낸다. 스페인의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맨 오브 라만차>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번 재공연의 류정한, 정성화, 김선영, 이훈진은 3번째 같은 배역을 맡고 있다. 캐릭터를 자신의 몸에 발랐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들은 현재 스스로의 배역을 맘껏 즐기는 중이다. 연기와 노래 모두 자신에게 최적화된 스타일과 여유를 선보이는 돈키호테(류정한ㆍ정성화)와 알돈자(김선영) 외에도 이번 2010년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 돈키호테의 충직한 심복 산초(이훈진)의 캐릭터가 좀 더 능청스러워졌다. 또한, ‘돈키호테’ 속 세르반테스의 등장을 늘리며 극중극이라는 형식을 더욱 부각시켰으며, 알론조의 조카 안토니오(정명은)와 가정부의 과장된 연기는 위선적인 인간을 대변하기에 더없이 탁월하다. <맨 오브 라만차>는 2월 1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계속되며 이후 대전과 대구를 찾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