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라는 노래 (스테이지톡)

시라는 노래, Like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가사의 대부분을 백석의 시에서 가져왔다. 시가 통째로 쓰인 ‘바다’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같은 곡은 물론이고, 백석의 기행시 연작 ‘남행시초’와 ‘서행시초’는 부분 발췌되어 ‘고향 가는 길’이라는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기도 했다. 자야가 생전에 남긴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라는 말처럼 백석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 그의 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음악이 더욱 특별한 것은, 백석의 시를 단순 인용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의 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특징을 핀셋으로 골라내 음악에 세심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는 형용사와 부사, 의성어와 의태어를 주로 사용함으로써 인물의 감정을 풍부하게 그려낸다. 끝말잇기처럼 이어지는 ‘여우난골족’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반복과 나열, 부연은 시에 리듬과 속도감을 부여하며 백석의 시를 하나의 음악으로 존재하게 한다. 재즈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뮤지컬의 넘버들이 백석의 시 자체에 집중한 까닭이다. 특히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나 슈만의 ‘시인의 사랑’ 같은 낭만주의 연가곡을 염두에 두었다는 채한울 작곡가는 25인조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단 한 대의 피아노만으로 담아낸다. 시에 담긴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솔로곡은 물론, 백석과 자야가 함께 부르는 ‘흰밥과 가재미와 우린’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듀엣곡은 하나의 훌륭한 발라드로 소비될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여기에 작품은 음악을 통해 인물 사이에 흐르는 공기나 화자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을 미세하게 포착해내며 극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잇는다. 그야말로 백석과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와 존중으로 만들어진 작품.
현실적 한계, Dislike
뮤지컬은 음악은 물론이고, 의상과 무대에서도 백석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하얀돌’이라는 백석의 필명을 이용한 흰색의 활용. 백석의 올 화이트 슈트가 그렇고, 모든 것을 내어준 후 자야가 입는 소복이 그렇다. 흰 대나무숲과 덩그러니 놓인 평상 하나의 무대 역시 눈 내리는 산골 오두막이라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어 속 상상의 시·공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무대 한켠을 가득 채운 대나무숲은 백석과 자야가 함께 떠나는 길이 되었다가 때로는 외부와 단절한 채 가난해도 행복했던 둘만의 한 때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홀로 남겨진 자야의 외로움 역시 대나무숲 너머에서 그를 지켜보는 백석과 사내가 있을 때 극대화된다. 기방이 되었다가 단칸방이 되었다가 잠시 머무른 가게가 되는 평상 역시 관객의 상상력을 동력삼아 움직인다. 묘사에 뛰어난 백석의 시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이러한 백석 시의 특징이 세트로 투사된 셈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무대는 연기의 공간과 연주의 공간까지 크지 않은 세트에 모두 담아내며 소극장의 한계를 최대한 넘어서려 노력한다. 그러나 무빙라이트와 세트가 만들어내는 현실의 소음이 어쩔 수 없이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제작에 참여한 많은 이가 백석에 집중한 흔적이 느껴져 현실의 한계가 더없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