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갬성’이라는 말이 있다. ‘감성’을 달리 부르는 은어지만, 실은 비슷비슷하게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어떤 분위기를 비꼬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갬성’을 자주 쓰는 것은 보이는 부분과 실제가 다르고 이 괴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뮤지컬 <차미>는 취업시장에서 수없이 낙오하고 “나 혼자 찌질한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차미호를 주인공으로 한다. 자존감이 낮은 그는 발랄하고 완벽한 ‘부캐’를 만들어서라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깨진 핸드폰에서 ‘부캐’인 차미가 현실세계로 나와 차미호의 일상을 대신한다. 이 과정은 ‘갬성’에 담긴 정서와 비슷하다. 차미호와 차미의 차이는 종종 우스꽝스럽고, 차미의 활약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우며, 차미호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진다. 가짜가 쉽게 진짜가 되는 과정이 가속을 멈추고 지금을 돌아보게 한다.
‘부캐’의 등장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문장의 무게와는 무관하게,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주제는 종종 진부하게 들린다. <차미>는 현실의 차미호와 이상의 차미를 양극단에 세워두고 이들의 좌충우돌을 다룸으로써, 관객이 공감을 넘어 이 간극을 웃어넘기도록 돕는다. 작품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음악이다. 말로 설명하면 답답하거나 과해보이는 차미호와 차미의 성격이 서로 다른 음역대와 창법으로 구현됐다. 같은 곡에서도 차미호가 멜로디의 큰 변화 없이 깨끗하게 노래한다면, 차미는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뽐내는 쪽에 가깝다. 차미호를 둘러싼 주변 인물을 설명하는 것도 서로 다른 장르의 곡을 통해서다. ‘부캐’들의 곡은 오페라의 아리아나 랩처럼 그 특징이 또렷하고, 괴짜처럼 보일지언정 자기만의 색을 가진 김고대에게도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 이들과 달리 차미호의 곡들은 대체로 무난해 잘 들리지 않지만 가장 자연스럽다. 가사와 착 붙은 <차미>의 곡들이 인물을 설명함과 동시에 작품의 인상을 결정하는 셈이다.
여기에 배우들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현실감각을 불어넣는다. 차미와 오진혁의 ‘부캐’ 프린스는 과하게 우스꽝스러운 움직임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상호작용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차미호는 이들의 활약에 맞춰 부러움과 우울감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며 작품의 균형을 맞춘다. 웃음포인트가 된 ‘부캐’들의 활약에서 발견되는 부자연스러움이 어떤 씁쓸함을 남길 때, 작품은 한쪽이 사라짐으로써 사건이 끝난다는 게임의 룰을 제시하며 이대로 괜찮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차미>는 현실의 차미호와 이상의 차미 중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 현실을 명확하게 직시하는 것만큼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90도 각도로 연결되어 소셜미디어 속 차미의 세계와 현실 세계 속 인물들의 삶을 다룬 두 개의 세트는 접으면 정확하게 하나가 된다. 현실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이상은 없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두 세계를 잇는 균형감이며 이 선택의 주체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