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화로 위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곱창이 지글지글 익어가지만, 일본인들에게 곱창은 먹지 않고 버리는 부속품일 뿐이다. 달달한 막걸리와 시원한 맥주에 거나하게 취한 손님들이 시끌벅적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지육신이 멀쩡해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폐지수거’와 같은 일뿐이라 대낮부터 빈둥빈둥 노는 것이기도 하다. 아련한 아코디언 선율에 흥을 돋우는 장구 소리가 곁들여지면 어김없이 가수를 꿈꾸는 셋째 딸이 나와 일본의 유행가를, ‘늴리리야’ 같은 민요를 부른다. 일본어가 들리고, 군데군데 한국어가 쏟아지고, 두 언어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온몸을 쓰는 이곳은 60년대 재일한국인들이 “시궁창 위에” 살던 오사카다. 곱창집 주인이자 사남매의 아비 용길(신철진)은 태평양전쟁에서 한쪽 팔을, 한국전쟁에서 전처를, 지독한 차별에 아들을 잃는다. 상실과 결핍만이 있는 곳, 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 그곳에 재일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한일 양국인이 외면해왔던 그 이야기 7
한국의 예술의전당과 일본의 신국립극장이 공동으로 제작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용길의 여섯 식구와 그의 곱창집에 모여든 손님들을 통해 재일한국인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연출과 극작을 맡은 정의신은 “재일교포 6세, 7세가 생기면서 재일교포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되어 가고 있다”고 언급했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빈곤과 철거, 차별과 자살 같은 제법 크고 묵직한 주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재일교포 2세인 정의신 작가는 자서전이나 다름없는 <야끼니꾸 드래곤>을 통해 되려 웃음과 희망을 발견해낸다. 피가 섞이지 않은 세 자매의 러브스토리는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얼개를 지녔지만, 연민이 있고 경계가 없다. 외상을 밥 먹듯 하며 곱창집 한켠을 채우고 있는 단골손님은 페이소스 있는 웃음의 단골주제이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이 고개를 든다면 그것은 북한으로 떠난 첫째 딸과 한국행을 선택한 둘째딸, 일본에 남는 셋째 딸의 현재가 여전히 이방인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이미 경험해버린 지난 날의 내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찰나의 행복은 길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6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지나간 역사이자 한일 양국의 현재이기도 한 <야끼니꾸 드래곤>은 그래서 국내에 소개된 재일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고>, <박치기!>, <우리 학교> 등과는 달리 더 넓은 세계관과 시선으로 그들을 관조한다. 모두가 떠난 잿빛 마을, 지붕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손을 흔드는 막내아들과 단출한 리어카 하나에 의지해 덤덤히 걸음을 옮기는 용길의 머리 위로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벚꽃이 흩날린다. 그리고 그 순간마저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그동안 생각의 범주에 없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공연이기도 하다. 공연기간은 짧다. 땀 냄새와 술 냄새, 그리고 연탄 피우는 연기로 가득한 <야끼니꾸 드래곤>은 3월 20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