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의 독립 선언 (텐아시아)

여주인을 사랑해 살인을 저지른 하인 카인즈(이진규)가 무대 위로 뛰어나온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의 눈빛과 손짓은 베르테르(송창의)와 롯데(임혜영), 알베르트(민영기)에게로 전해지고, 무대 위에 늘어선 열 명 남짓한 인물들은 찬란했던 사랑의 순간을 찾는다. 지난 열 번의 공연이 베르테르가 발하임에 도착하는 시점에서 출발했던 것과 사뭇 다른 이 오프닝은, 2010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의 독립선언이자, <베르테르> 제2의 시작과도 같다.
1774년에 쓰여진 괴테의 동명소설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예술과 자연을, 그리고 정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한 한 남자. 이야기구조는 단순하고 소설을 가득 채운 서간체는 지극히 개인적이었지만, 감정의 가감이 없던 소설은 그래서 더욱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00년 한국에서 탄생한 뮤지컬 <베르테르>는 이런 1인칭 소설에 맞게 베르테르의 감정을 우직하게 그린 것은 물론,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데칼코마니 된 카인즈와 ‘금단의 꽃’을 작곡한 클라라의 죽음을 함께 전하며 베르테르를 더욱 시리도록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베르테르>는 지난 3년간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한다.
컴백만으로도 반가운 8
10월 22일부터 11월 30일까지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베르테르>가 10주년을 맞이하여 가장 많이 변화한 부분은 바로 롯데의 감정이다. 그간 ‘어장관리녀’로만 치부되었던 그녀는 단순한 발하임의 정물화를 넘어 생생하게 살아 불안하게 흔들리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해내며 두 남자의 감정선까지 살려낸다. 적극적인 그녀의 변화 덕에 베르테르는 오해를 거듭하는 찌질한 짝사랑 추종자에서 사랑의 순간을 보존하는 로맨티스트로, 알베르트 역시 과도한 질투를 일삼는 소인배에서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우직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바로 작품을 감싸고 있는 공기 그 자체다. 지난 공연들이 기름을 끌어안고 불 속에 직접 뛰어든 버전이었다면, 2010 <베르테르>는 달라진 오프닝에서도 알 수 있듯 직접적인 감정의 설명보다는 최대한 많은 부분을 상징으로 열어둔다. 베르테르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엔딩마저도 관객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긴다. 여기에 감정이 널을 뛰는 원작의 베르테르와 달리 감정을 100% 다 드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안으로 삭히는 송창의의 연기가 더해지며, 2010 <베르테르>는 마치 “추억을 까먹으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 말하는 오르카(최나래)처럼 그 시절과 순간을 담담히 회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바이벌 공연에 있어서 전작과의 비교는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2010 <베르테르>는 원작과의 교집합을 선택하지만, 전작과 다른 방식으로의 독립도 추구했다. 무엇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는 꼭 해야겠다. 시린 가을, 돌아와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