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려주세요. 딩동댕?
선택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불렀던 이 노래는 때때로 꼭 들어맞았다. 요즘은 뮤지컬을 볼 때마다 그 노래가 떠오른다. 100년이 훌쩍 넘은 역사에도 ‘원캐스트’가 기준인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와는 달리 21세기 한국에서는 한 배역에 배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화제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이하 <캐치 미>)에는 초연멤버 엄기준, 박광현, 규현, 키에 손동운과 김동준까지 합류해 총 6명의 프랭크가 결정되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의 쫓고 쫓기는 과정이 흥미로웠던 동명 영화와 마찬가지로 <캐치 미>는 상황에 따라 파일럿, 형사, 의사가 된 프랭크의 사기행각에 초점을 맞춘다. 프랭크를 중심으로 극이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객석과 무대에서의 동선도 다양하며, 퇴장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그야말로 프랭크의, 프랭크에 의한, 프랭크를 위한 뮤지컬. 그동안 노래와 춤은 물론, 패션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던 샤이니의 키는 초연 당시 뮤지컬 데뷔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의 천연덕스러움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배짱으로 능청스럽게 코미디를 살리며 무대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성인잡지 모델이 자신 앞에 나타난 순간 코피를 쏟는 액션을 취하거나, 101번째로 ‘우유통에 빠진 생쥐’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버지의 입모양을 따라하는 등 대사가 아니더라도 상황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법을 안다. 뛰어난 관찰력은 다양한 리액션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연기에까지 활력을 주며 극을 한층 더 풍성하게 한다. 짧은 호흡과 부정확한 발음, 완급조절 등 뮤지컬연기의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큰 아쉬움을 남기지만, 관객의 이목을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집중시킬 줄 아는 무대장악력은 단점을 덮기에 충분했다. 재공연에 참여하며 “너무 답답했다”며 스스로의 단점을 인식한 그가 보여줄 프랭크가 기대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연기나 뮤지컬에 대한 경험이 적은 이들은 결국 그동안 그들이 잘해왔던 것을 잘하게 되어 있다. 샤이니의 키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지점에서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면, 슈퍼주니어의 규현의 강점은 역시 노래다. 그룹 내 보컬담당이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를 바탕으로 감정을 세밀하게 직조하는 성시경과 김동률의 발라드를 즐겨 부르는 그에게선 로맨틱한 기운이 넘실댄다. 홀로 남겨진 프랭크의 외로움을 대변한 ‘Someone Else's Skin’, 브랜다와 사랑에 빠진 프랭크가 부르는 ‘Seven Wonders’는 그런 규현의 진가를 드러낸다. 다만, 11명이라는 그룹 안에서 도드라지기보다는 앙상블에 주목했던 규현의 경우 <캐치 미>처럼 ‘원톱’ 뮤지컬보다는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에 더 잘 어울린다.
옥주현에 이어 JYJ 김준수는 뮤지컬로 아이돌 인생 제 2막을 열었다. 음악이 중심인 뮤지컬은 상대적으로 그룹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고, 아이돌 역시 더 많은 관객유입을 원하는 제작진을 위한 보물 상자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멀티캐스팅은 그 과정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양쪽 다 명심할 것이 있다. ‘무대에 설 만한 실력이 있는가’라는 그 단순한 명제 말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길을 찾으며 좀 더 영악해질 필요가 있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려주세요 딩동댕?’으로 고르기에는 티켓값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