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넘 그 자체로의 유준상, Like
180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바넘은 현대 서커스의 원형을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텐트형 극장과 화려한 공중곡예, 거대한 동물들의 묘기와 독특한 인물들의 향연. 하지만 그가 세운 업적만큼 장애인과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물론, 거짓말로 뒤범벅 된 홍보에 대한 비판은 시대가 흐르며 점점 거세져왔다. 2017년 바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이하 <바넘>)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젠체하지 않고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극이 시작되고 5분이 채 되지 않아 바넘은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기회’라는 단어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 주변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위기를 재료 삼아 반등을 꽤한다. 바넘의 매력과 다양한 테크닉은 주변을 현혹시키고 세를 넓혀가며 작품을 견인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그리고 유준상은 여기에 가장 적확한 배우다. 다년간의 무대 경험은 ‘쇼맨’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다수의 예능에서 보여준 유준상 특유의 친근한 이미지가 더해져 바넘을 우리 앞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로 창조해낸다. 유들유들하고 뻔뻔한 유준상의 태도와 연기는 바넘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도 관객들이 기꺼이 눈을 감게 하는 힘이다.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더 뮤지컬배우 유준상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하는 뮤지컬.
환상이 되지 못한 쇼, Dislike
바넘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줌으로써 사업을 넘어 정치에서도 영향을 미쳐 결국 시장까지 된다. 하지만 바넘을 그저 사업수완 좋은 사업가로 평가한다면, 그의 인생을 가지고 굳이 뮤지컬까지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뮤지컬은 바넘을 환상과 꿈을 담은 쇼를 통해 흑백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이고자 하는 인물로 표현한다. 작품은 그런 그의 욕망을 반영하듯 공중곡예와 저글링, 불 쇼 등을 실제 무대에 펼쳐놓는다. 뮤지컬 무대에서 보기 드문 서커스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지금의 무대는 제작진의 의도만 파악될 뿐 그 자체로 관객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세트를 비롯해 조명과 의상 등의 시각적 구현이 약하다. 회전무대의 효과는 미비하고, 다양한 인물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의상은 도드라지지 않으며, 조명 역시 인물을 비추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특히 쇼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서커스단원들의 활약을 제외하면 <바넘>을 대표할 만한 장면이 없다. 물론 프로덕션 디자인은 제작비와 직결되는 영역이며, 위험 요소가 많은 서커스를 라이브로 100회 동안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바넘을 ‘위대한 쇼맨’으로 그리고 싶었다면, 과감한 선택과 집중은 필요했다. 쉽게 볼 수 있는 데다 훨씬 더 화려한 영화라는 비교대상이 있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