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전과] chapter 17. <맨 오브 라만차> (텐아시아)

단원의 특징 ①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196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② 뮤지컬은 세르반테스가 수도원에 세금을 추징한 죄로 지하 감옥에 잡혀 오면서 시작되고, “기사지망생” 알론조 키하나의 모험담을 그린 <돈키호테>는 서열을 나누던 감옥에서 극중극 형태로 소개된다. 데일 와서맨은 <맨 오브 라만차>를 먼저 TV 드라마용 대본으로 썼고, 이후 작곡가 미치 리에 의해 뮤지컬로 변화했다. ③ 국내에서는 2005년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초연되었으며, 쇼적인 부분이 다소 약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꿈꾸길 독려하는 드라마로 꾸준히 재공연되어왔다. 6월부터 시작된 2012년 공연은 황정민에 이어 초연멤버 류정한이 재합류해 서범석, 홍광호와 함께 한다. 공연은 12월 31일까지 샤롯데 씨어터.
평균을 내봅시다: 36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으로 참여한 배우들의 평균 나이. 그동안 다섯 차례 공연되며 김성기, 류정한, 조승우, 정성화,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가 출연했다. 2007년 공연 당시 조승우는 28세, 이번 공연의 황정민과 서범석은 43세, 뮤지컬은 아니었지만 연극 <돈키호테>에는 이순재가 일흔일곱의 나이로 참여했다. 정의와 꿈, 사랑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조승우는 이 작품을 보고 뮤지컬배우를 꿈꿨고 정성화는 <맨 오브 라만차>를 “평생 할 작품”으로 꼽았으며 류정한은 전용관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돈키호테>는 소설을 넘어 영화, 발레,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되었고 특히 달리, 피카소, 샤갈 등이 자신의 화풍으로 그려낸 돈키호테가 흥미롭다.
친구를 소개해 봅시다: 산초 판자
현실을 또렷이 인지하지만 키하나를 떠나지 않는 충직하고 순수한 부하. 무거운 주제와는 다르게 사실 원작 소설은 귀족에 대한 풍자와 살뜰한 위트로 가득 차 있고, 뮤지컬은 그 기능을 산초를 통해 구현한다. 소설 속 산초는 돈 때문에 키하나를 따르고 브로드웨이에서는 키하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인물로 그려지지만, 한국의 산초는 귀엽고 사랑스런 20대로 재탄생됐다. 2007년부터 산초 역을 맡은 이훈진은 ‘배가 나온’이라는 뜻의 판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외모로 매 공연 참여했는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같은 엉터리 속담은 캐릭터를 위해 직접 설정한 것이라고. 특히 이번 공연은 ‘<돈키호테>는 진지하다’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좀 더 대중친화적으로 변화했다. 배우들의 호흡은 조금 느려졌고, 구시렁대는 죄수들의 대사가 더해져 관객이 캐릭터를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래를 배워봅시다: ‘The Impossible Dream’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곡. ‘The Impossible Dream’은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만큼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많은 이들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라 부르는 이 곡은 그동안 엘비스 프레슬리, 플라시도 도밍고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는 물론, 영화, CF,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작품에 삽입되어 왔다. 이 곡은 극에서 세 차례에 걸쳐 불리는데, 세르반테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떠날 때 죄수들이 부르는 피날레 버전은 이 뮤지컬의 제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규칙적인 기타와 퍼커션 사이에서 평온하게 연주되는 호른의 선율을 돈키호테의 목소리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곳에 가고 싶다: 캄포 데 크립타나
돈키호테가 탄생한 스페인의 한 마을. 대부분의 대극장 뮤지컬이 화려한 스펙터클로 공간을 채우는 것에 비해, <맨 오브 라만차>는 특별한 세트의 이동 없이도 드라마와 완벽하게 결합된 무대를 만들어낸다. 무대는 지하 감옥을 기본골격으로 세운 후 극중극에 걸맞게 세트 한 가운데를 여닫음으로써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담아냈다. 특히 감옥 한 가운데에서 펼쳐진 해바라기밭은 스페인의 정서를 살리면서 암울한 현실과 희망을 동시에 구현해낸다. 매우 기능적이면서도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장면. 무대디자인을 맡은 서숙진 감독은 돌과 나무 등을 통해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주목했고, 그랜드 캐니언에서 영감을 얻은 지하 감옥은 동굴 같은 벽을 만들기 위해 방염 스티로폼을 직접 조각해 일일이 색을 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맨 오브 라만차>를 “드라마와 조명, 무대가 1+1+1=1이라는 것을 알려준 작품”으로 꼽았다.
심화학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라는 뜻의 관용구로 <맨 오브 라만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 모험을 떠나도 산초는 여전히 아내에게 맞고, 스스로를 “둘시네아”로 부르며 의지를 가져도 알돈자는 여전히 천한 여종의 신분을 면치 못한다. 세르반테스 역시 ‘거울의 기사’를 만나 주저앉아버린 키하나를 <돈키호테>의 엔딩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는 키하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새로운 엔딩을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그 엔딩이 죄수들과 함께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맨 오브 라만차>의 힘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이 평등과 연대를 통해 생긴다는 것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힘은 의외로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