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대해서는 양가적 감정이 있다. 싱클레어가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을 함께 느끼면서도, 수없이 이어지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고민은 종종 답답하고 민망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덕과 인간 내면의 어두운 무의식을 모두 다룬 <데미안>은 어쩌면 이러한 양가적 감정까지도 느끼는 것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이라 말하는 듯하다.
뮤지컬 <데미안> 역시 마찬가지다. 뮤지컬은 여섯 명의 배우가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구분하지 않고 연기하는 설정으로 원작과 차별을 둔다. 이 장치는 인간의 양면을 고루 다룸과 동시에 이것이 한 사람에게 모두 존재하고 있음을 물리적으로 표현해낸다. 관념적인 단어와 여러 상징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 대사와 음악, 움직임은 이 주제를 구체화하는 요소들이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더러울 정도로 깨끗한 세계”와 같은 모순적인 가사다. <데미안>의 각색 방향은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 관객이 자연스레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아니다. 명확한 단어를 통해 모호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감정을 공유하는 쪽에 가깝다. 직접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쪽과 저쪽, 밝은 곳과 어두운 곳, 양심과 욕망의 존재는 이 기사들로 도리어 뚜렷해진다.
음악과 움직임 역시 극과 극을 오가며 주제를 담아낸다. <데미안>의 넘버들은 비장하면서도 경쾌하고, 하나의 감정에서 연상되는 장르를 훌쩍 넘어 전혀 다른 음악과의 과감한 연결을 선택한다. 배우들의 움직임도 “얼굴은 생각의 거울”이라는 가사를 재현하듯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액션에 가깝다. 조명은 배우의 정 가운데 떨어지며 선을 만들어내고, 무대에는 ‘폐허에서 빛나는 별’이라는 부제 그대로 낡은 구조물 사이로 푸른 잎이 가득하다. 각자의 영역에서 모순의 정서를 표현하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제를 담아낸 요소들의 의도가 생각만큼 객석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심리적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극에서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구현되는 음악과 움직임은 관객을 끌어당기기보다는 밀어내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결국 배우들의 연기다. 배우들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중에서도 전성민과 김현진은 단연 돋보인다. 기본기가 탄탄한 김현진은 다양한 발성을 수시로 바꿔가며 싱클레어가 영향을 주고받은 여러 인물을 구현하고, 정확한 딕션으로 관념적인 대사들을 전달한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베르나르다 알바> 등의 작품에서 결핍과 콤플렉스를 탁월하게 그려왔던 전성민 역시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방황과 각성, 변화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관객의 지지를 얻는다. 소설은 제 안의 혼돈을 겪어내며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말한다. 뮤지컬 역시 이 노선을 따르지만 아직은 혼돈의 비중이 더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