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틱틱붐>, 조나단 라슨의 아파트로 초대합니다 (텐아시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이 말했다. “당신의 앞날은 탄탄대로일거요.” 하지만 당사자인 조나단 라슨은 그 성과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찻물이 끓는 사이,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대동맥류파열로 퇴장한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지난 9월 30일부터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틱틱붐>(Tick Tick Boom)은 그런 그에 대한 이야기다.
스티븐 손드하임을 존경하는 스물아홉 존(신성록)의 꿈은 브로드웨이에 혁명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것. 하지만 현실 속 그가 가진 것은 “부엌에서 샤워해야 하는” 낡은 임대 아파트와 키보드 한 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뿐이다. 물론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여자친구 수잔(윤공주)과 ‘불알친구’ 마이클(이주광)도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지만 여전히 흐르지 않는 물에서 유영하는 존을 그들은 견디지 못한다. 무용을 했으나 이제는 돈 많은 집 딸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수잔은 결혼을 원하고, 함께 연극을 했던 마이클도 어느새 광고회사의 주역이 되어 존이 새로운 일자리를 갖길 강요한다. 그래서 그는 나이에 걸맞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여전히 배고프지만 즐거운 창작의 꿈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 눈물 흘리는 당신, 바로 청춘 8
세상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양수 삼아 작품을 잉태해내지만, 조나단 라슨 만큼 모든 것을 작품에 내던지는 사람도 없다. 1996년 전 세계적 메가 히트를 기록한 그의 대표작 <렌트>와 <틱틱붐>은 그런 외로운 줄타기를 하던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꺼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틱틱붐>은 ‘천재’라 칭송받아온 조나단 라슨의 모노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지만 오히려 ‘천재’라는 수식어를 버렸을 때 숨은 미덕이 나타난다. 자신이 좋아하고 꿈꾸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길에 대한 확신도 자신감도 없는 인물.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지극히 평범한 이의 보편적인 고뇌는 결국 <틱틱붐>을 청춘 언저리에 있는 모두를 위한 작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말한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그래서 이 작품은 글로벌하다.
2010년 한 해 동안 쉬지 않고 줄기차게 무대에 섰던 신성록에게도 <틱틱붐>은 오래간만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도, 창작을 일삼는 직업도 동일하다. 예의 꿈을 향한 이들이 순수함과 열정으로 대변되는 것이 비해 적당히 예민하면서도 게으른, 잘 나가는 친구를 향한 부러움과 속물다움까지 슬며시 비추는 신성록의 존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1990년 뉴욕에 박제되어 있는 인물이 아닌 2010년의 오늘 관객석 바로 옆에 앉아 살아 숨 쉬는 인물은 그래서 다시 공감대를 쌓는다. 특히 충무아트홀 블랙의 원형무대는 “라슨이 아파트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자기 얘기 하는” 연출가 이항나 연출의도에 잘 부합된다. 그리고 세 명의 배우는 무대와 객석을 허물어 진짜 조나단 라슨의 집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쥐가 사는 침대”가 있는 존의 집에 당도한 이상, 존 스스로 생일축하곡을 연주하는 순간, 눈물을 훔치지 않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지치지 않고 일어서는 자를 위한 연서, 당신도 받아들 준비가 되어있는가. 공연은 11월 7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