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톨 같은 사내의 등장이었다. 짧은 머리는 만지면 ‘쓱싹’이라는 소리가 날 것 같이 동그랗고 맨들맨들했다. 온몸이 긴장으로 바짝 경직된 순간에도 애써 여유를 만들며 “널 유혹하겠어”라 속삭였다. 사내의 이름은 이율. 그는 제 이름과 꼭 닮은 모습으로 2007년 <쓰릴 미>에 나타났다. 데뷔작, 2인극, 살인 그리고 동성애. 아직 채 빠지지 않은 뽀얀 볼살을 소년처럼 간직한 스물넷의 이율은 자신에게 주어진 불안하고 두려운 짐을 스스로 밀어버린 머리에 드러냈다. 슬픈 피아노 선율 위 600개의 눈앞에 당당히 선 이율만의 인사는 제법 강렬했고, “능력에 비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딱 그만큼 “모든 작품이 <쓰릴 미>와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흔적을 지우듯 더 큰 보폭으로 멀찍이 달아났다. 4년간 코미디부터 멜로, 성장드라마, 고전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무대를 껴안았고, “20대 중반까지 똑같은 연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자신감도 함께 얻었다. 올 여름에 나타난 <아가씨와 건달들>의 네이슨은 연신 ‘누나’를 연발하며 무대 위의 누나도, 무대 밖의 누나도 흔들어놓았다. 꼬집어주고 싶은 볼살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춰 섰다.
숨고르기 끝에 시작되는 스퍼트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이 조금씩 생겼어요.” 오히려 잃을 게 없어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과거를 지나 자기만의 탑을 쌓아가는 이율에게 불어 온 제법 거센 바람. “<아가씨와 건달들>이 끝나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전 아예 극과 극의 캐릭터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중간 것을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대중예술가니까 대중에 맞춰가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제가 가진 것들이 없어지는 건 또 싫거든요.”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만난 그는, 익숙함을 선택했다. 페이스 조절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 “<김종욱 찾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까 해요. 무대를 날로 먹을 수도 없는 작품이고, 한번 경험이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상대배우나 관객들이 나에게 기대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그런 부분은 제가 감수해야겠죠.”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온 몸으로 느끼며 이율이 바람에 나부낀다. “제 안에서 끊임없이 많은 질문이 생겨나요. 여전히 답을 못 내리고 있지만, 1년 후쯤엔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숨고르기가 끝나면 마라톤은 다시 시작된다.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과 능력을 준다고 했다. 차곡차곡 쌓인 고민 끝에 영글 이율의 열매가 기다려지는 것은 그래서다. 왠지 그 열매는 단맛부터 신맛까지 오묘하고도 환상적인 맛으로 모두를 현혹시킬 것만 같다.
My name is 이율.
1984년 2월 17일생. 형이 록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임재범 씨 노래를 자주 들었다. 난 옛날부터 너무 좋아했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좀 억울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숨겨두고 나만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 하하.
데뷔를 강한 캐릭터로 한다는 건 이후의 모든 작품들이 데뷔작과 비교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전히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지금의 <김종욱 찾기>와 그때의 <쓰릴 미>를 비교한다면 내 연기에 있어서는 전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처음으로 재공연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해서 무대에서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역시 경험은 무시 못 하는 것 같다.
어느새 애교가 무기가 됐다. <김종욱 찾기>의 ‘이율’도, <아가씨와 건달들>의 네이슨도 장난기가 많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무대에서 몇 번 하다 보니 많이들 좋아해주시더라. 실제의 나는 그렇게까지 귀염성이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팬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다. 그건 하나의 이미지니까 소중히 간직해주셨으면 좋겠다. 하하하
대인관계가 나쁘지 않다. 이리저리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집에도 좀 늦게 들어가는 편이고. 남자 선배들은 나를 같은 동료로 봐주는 반면, 누나 선배들은 좀 귀여운 동생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 후훗
노래를 잘 했으면 홍광호 형보다 잘 나갔을 거다. 하하하. 노래방세대라서 자주 다니기는 했지만 연극을 주로 했고, 계원예고 시절에도 나는 뮤지컬을 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했다. 뮤지컬 역시 연기가 기본이라는 생각도 있고.
스스로에게 당근을 주는 타입이다. 못하는 부분은 빨리 포기하고 잘하는 부분을 극대화시켜서 더 장기를 만들자! 그런 주의지. 일에 있어서는 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편이다.
그런데 올해 큰 시련이 있었다. <페이스 메이커>라는 마라톤 영화를 찍었는데, 두 무릎이 다 망가진 상태로 계속 뛰었다. 추운 날씨에 마라톤복 입고 계속 뛰고 대기하고 그러다보니 인대가 마르는 무릎 건염이라는 게 생겼다. 왼쪽이 먼저 다쳐서 오른쪽 무릎에 힘을 싣고 달렸더니 왼쪽이 나을 무렵에는 오른쪽이 아팠다. 결국엔 두 다리가 동시에 아팠다.
영화를 울면서 볼 것 같다. 많은 신에 출연하는 건 아니지만, 연기보다 무릎에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커서 후회가 많다. 좋은 기회에 좋은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끝이 씁쓸했다. 다행히 지금은 다 나았다.
가을을 좀 타는 편이다. 서른이 멀지 않아서인 것 같다. 달력을 보다가 ‘작품 한두 개 하면 1년이 후딱 가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 전에는 무한한 자신감과 믿음들이 있었는데, 슬슬 책임감이 자신감을 잡아먹기 시작한 단계인 것 같다.
그럴 때 마다 김달중 연출님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편이다. 고등학교 은사님이고, 내 머리를 올려주셨고, 선생님 덕분에 영화도 찍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너무 서둘러 가지 말라고 하신다. 고민은 당연한 거고 지금 잘 하고 있으니 그냥 하라고. 조언이라는 게 딱히 없는데, 난 그 그냥이라는 말이 가장 좋더라.
이율이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
“저에게 능글맞은 부분이 있나 봐요.”
“보통 팬과 배우 사이에는 중간에 어떤 벽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저도 팬들이 편하고, 팬들 역시 저를 굉장히 편하게 대하거든요. 왜 그런가 했더니 저한테 능글맞은 부분이 있어서 그렇더라구요.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야만 저도 편해지니까요. 그래서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제가 먼저 다가가고.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웃음) 크흐흐흐흐. 아주 조금 그런 게 있어요.”
“가장 비슷한 사랑의 방식은 <쓰릴 미>”
“그동안 했던 작품들에는 조금씩이라도 멜로가 있었어요. 그 중에서 제가 하는 사랑의 방식과 가장 비슷한 것은 <쓰릴 미>인 것 같아요. 다만 상대가 여자일 뿐. 하하하.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긴장은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권태기도 늦게 오고, 혹은 안 올수도 있고. 근데 그렇게 밀고 당기는 연애에는 위험한 순간들도 있어요. 오늘은 밀리고 싶지 않은데, 상대방이 자꾸 밀면 나가 떨어져서 아예 끝이 나기도 하죠. 어릴 때는 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애인보다 친구가 우선순위에요.”
“계원예고를 다니는 3년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친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 중에서 그나마 제가 조금 더 일찍 사회에 나와서 일을 시작한 경우인데, 누구 하나 시기질투 하지 않고 같이 가는 친구들이죠. 제 삶의 우선순위 중 하나에요. 예전에 여자친구가 있을 때도 “너보다 내 친구가 우선순위야, 친구가 보자고 하면 너보다 친구들 보러 갈 거야”라는 얘기까지 했을 정도죠. 그래서 대부분 다 차였어요. (웃음) 그래도 나에겐 친구들이 있으니까 기분 나쁘지 않아요. 걔네만 있으면 된 거야. (웃음) 근데 정말 웃긴 건 끼리끼리 논다고, 그 친구들도 그렇게 말하고 다니고 그렇게 살아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