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낭랑긔생>, 조은 작가x류찬 작곡가 (프로그램북 기재)

<낭랑긔생>은 ‘단발머리 기생 강향란’을 주인공으로 한다. 어떤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나.
조은: 여성서사를 하고 싶은 게 첫 번째였다. 인물은 그 다음이었는데, 가능하면 우리나라에서 찾고 싶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근우회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최초의 여성운동을 이끈 곳인데, 강향란이라는 기생이 머리카락을 자른 후 근우회에서 활동했다는 사료가 간단하게 있더라. 여성운동이라는 사건과 기생이라는 아이템이 공연으로 풀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란의 삶도 드라마틱했고.
이미 대본이 완성된 상태에서 작곡가를 만났다고 들었다. 대본의 첫인상은 어땠나.
류찬: 사실 작가님이 뚜렷하게 장르를 정하지 않고 ‘공연’이라는 큰 틀 안에서 쓴 대본이어서 내용이 너무 넘쳤다. 함께 하기로 결정한 후에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추리고 다듬어가며 만드는 과정이 재밌었다. 특히 여성운동은 시대를 거치면서 생물학적 ‘성’보다는 사회적 ‘젠더’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고, 결국엔 인간의 이야기로 소급될 수밖에 없다. 인권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워서 애정을 갖게 됐다.
긴 대본 안에서 어떤 것을 선택했나.
조은: 강향란의 삶 자체가 재밌어서 시간대를 뛰어서라도 다 담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작품을 그의 일대기로 풀어보니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그도 남성에게 의존했던 게 있었고, 머리카락을 자른 것도 한 남성과의 이별 때문이었다. 어차피 팩션이 된다면 지금 얘기했을 때 더 의미 있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여성의 연대였다. 향란이 권번 식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내는가에 집중한 이유다. <낭랑긔생>은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메인 캐릭터의 성장기를 담아낸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이 너무 안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일정 부분 고집한 면도 있다.
향란의 주변 인물들은 변화의 단계를 인물로 구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은: 맏딸로 생계를 책임지는 정숙이 그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인물이다.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던 때였고, 정숙은 그 모습을 대변한다. 은희는 신여성이 되고 싶지만 아직은 크게 나아가지 못한 인물, 순화는 변화를 꿈꾸면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이다. 신여성을 대표하는 근우회의 명순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서 캐릭터를 참고했다. 각기 다른 단계에 있는 인물들이 만나 생기는 갈등과 우정이 작품을 움직인다.
<낭랑긔생>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류찬: 당시 권번의 기생들은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을 기본으로 해서 성장을 했다. 그런데 서양 음악을 훈련하는 권번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극에 새로운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가르쳐주는 이가 있다면, 근대와 전통이 혼재하는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서양 음악을 공부하고 그걸 중심으로 작곡하는 내가 감히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법적으로는 전통의 색채를 가진 음악과 홍난파, 현제명 같은 사람이 생각했을 법한 음악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며 작업했다. 특히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여자는 이래야 돼’ 같은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인물들이다. 그런 지점에서도 다양한 장르가 섞인 음악이 잘 맞지 않을까 싶었다.
조은: 요즘 국악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의 현대화가 창작진들에게는 도전이 되고 관객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래서 작곡가님께 우리 작품의 음악도 국악 베이스를 가져가되 다른 장르와 다양하게 결합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2018년에 했던 쇼케이스와 달리 본 공연에서는 장단과 가야금이 추가됐다.
류찬: 한국 전통음악에서 장단은 등뼈 같은 역할을 한다. 작년에는 여력이 안 돼서 빠졌는데 본 공연을 하게 되면서 들어오게 됐다. 가야금은 뜯고, 흔들고, 튕기는 사운드로 등뼈에 색채를 불어넣게 될 거다. 해금은 아무래도 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악기라 서양악기와 쉽게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악기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어 이번에도 함께 한다. 사실 전통공연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포맷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국악적 인상을 담아낼 수 있는 악기 편성이고, 추후에 여력이 돼서 삼현육각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경성시대를 다룬 작품이 많다. <낭랑긔생>은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까.
류찬: 그냥 옛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떤 지점에서는 지금의 우리보다 더 세련되고 급진적인 면이 있다.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소개되는 것 같다.
조은: 그런데 다루는 소재나 이야기는 제한적이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해도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당시의 여성들이 처한 삶과 연대를 보여주는 것으로써 차별점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엔딩이 다소 밋밋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객에게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나.
조은: <낭랑긔생>은 그 당시 주체적이었던 여성들의 움직임과 연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든 배드엔딩이든 어떤 식으로든 엔딩을 지어버리면 그것 자체가 우화스러울 수 있겠다 싶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열린 결말을 통해 관객이 현실과의 접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연을 본 후 돌아가는 길에 작품이 던진 질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