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존 핀 프로듀서 (텐아시아)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 빌리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하늘로 뛰어오르는 순간, 객석에 앉은 그의 아버지도 영화를 보던 관객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2000년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그렇게 끝났지만, 빌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빌리는 2005년 영국에서 동명의 뮤지컬로 변신해 현재 브로드웨이, 시카고, 호주의 하늘을 날고 있고 특히 지난 6월에 열린 제 63회 토니어워즈에서는 최우수뮤지컬상을 비롯한 총 10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영화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0년 8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the musical)가 한국에 찾아온다. 영어가 아닌 제 3의 언어로 최초 제작되는 <빌리 엘리어트>를 위해 지난 11월 8일 프로듀서 존 핀이 내한했다. 영화에서 뮤지컬까지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빌리와 함께한 그에게서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성인 배역 오디션을 위해 방한했다 들었다. 오전부터 오디션을 진행 중인데, 한국의 배우들을 본 소감이 어떤가.
존 핀 : 어제 밤 일본에서 도착해 아침부터 남자앙상블 배우들을 봤는데 아주 좋다. 특히 남자앙상블 같은 경우엔 굉장히 찾기 힘든 배역이다. 기본적으로 아크로바틱을 할 줄 알아야 하고, 한창 파업 중인 광부들이기 때문에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전에 봤던 대부분의 배우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본 시키 극단 관계자들이 한국배우들의 노래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배우들을 만나보니 노래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영화가 개봉되고 5년 후 뮤지컬이 제작되었다. 처음부터 뮤지컬을 염두에 두고 영화제작을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존 핀 : 영화 대본이 너무 좋아 제작을 시작했지만, 사실 흥행을 하기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너무 큰 사랑을 받아 많이 놀랐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연출을 맡았던 스티븐 달드리가 원래 공연연출을 했던 사람이라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다. 워낙 작품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감독, 작가, 안무가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흔쾌히 참여하게 되었다. 무대화 작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당시 칸 영화제에서 우리 영화를 본 엘튼 존이 직접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이후 영화에 이어 뮤지컬도 소위 대박이 났다.
영화에서 뮤지컬까지 계속 <빌리 엘리어트>와 관계된 일을 하고 있다. 어떤 부분이 10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하게 만들었나.
존 핀 :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 영국 북부 뉴캐슬 지역의 탄광촌인데, 실제 할아버지가 그 지역 광부셨다. 원래 어떤 글을 읽으면서 울거나 하진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 내가 그 지역 출신이다 보니 대본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빌리 엘리어트>는 빌리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정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가렛 대처 시절 그 지역의 분쟁이 계속됐는데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남아있어 그때부터 정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스크린에서 무대로 공간을 옮기며 많은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영화와 뮤지컬은 어떤 차이가 있나.
존 핀 : 영화를 만들 때도 뮤지컬을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뮤지컬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져 있었다. 특히 빌리는 대부분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는데, 실제로 소년의 춤을 보여줄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낼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보다 뮤지컬 버전이 더 좋다. (웃음) 뮤지컬은 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더 자유롭게 표현해주기도 하고, 영화에서 잘했던 부분들도 훨씬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로케이션 장소가 필요한 영화와 달리 무대는 동일한 공간이 광부들의 집회장소가 되기도 하고 빌리의 방이 되기도 한다. 그런 부분들이 너무 마법 같고 놀라웠다. 영화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 무대에서는 모두 가능하다.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들. 그런 부분들이 공연의 장점인 것 같다.
그동안 영화 제작만 하다가 뮤지컬 작업을 처음하기 때문인지 무대화 되는 모든 과정을 즐기고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같다.
존 핀 : 그동안은 공연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좋은 것들을 많이 발견했다. TV나 영화에서는 받을 수 없는 무언가가 공연에는 있는 것 같다.
영화와 뮤지컬을 모두 함께 작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단점이 있다면.
존 핀 : 나 외에도 스티븐 달드리 감독, 극본을 쓴 리홀, 안무가 피터 달링 등 영화를 제작했던 팀 대부분이 뮤지컬을 함께하고 있다. 영화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을 뮤지컬에도 똑같이 옮기고 있기 때문에 사실 특별한 단점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들과 10년째 일을 하고 있어서 슬슬 지겨워지기는 하는 것 같다. (웃음)
빌리의 경우 발레, 탭댄스 등 다양한 춤을 춰야 하고 거기에 뮤지컬이니 노래와 연기까지 해야 한다. 뮤지컬에서는 완성된 배우가 아닌,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찾아 트레이닝을 거쳐 빌리로 만들어낸다. 그 일련의 과정이 곧 <빌리 엘리어트>와도 같다. 인내심을 요하는 1년간의 트레이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존 핀 : 아이들마다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스티븐 달드리는 언제나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을 “마라톤을 하면서 햄릿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는 말로 표현했다. 한명의 소년이 발레, 탭, 아크로바틱, 노래, 연기까지 모든 걸 해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갖춘 아이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부족한 부분을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을 찾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아이들의 습득력이 좋고 능력이 뛰어나 인내심에 대한 걱정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아이들이 오히려 선생님들에게 더 하자고 요청하기도 할 정도다. 아이들 모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년간 그 기간을 잘 거쳐 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현재 한국에서 트레이닝 중인 아이들을 만나봤을텐데, 다른 나라 아이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
존 핀 : 지금까지 한국의 아이들 외에도 영국, 호주, 미국, 일본 (한국 공연 이후 일본 공연이 이어진다)의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건 그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다. 그런 걸 보면 춤은 만국 공통의 언어인 것 같다.
빌리가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지만, 빌리의 아버지와 윌킨슨 선생님 등 성인 캐릭터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그들은 어떠한 기준으로 선발되나.
존 핀 : 오늘 빌리 아버지인 재키와 권투코치 조지 후보들을 만나봤는데, 지금까지 본 배우들은 모두 굉장했다. 우선 빌리 아버지의 경우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리 아빠 같다는 느낌의 배우를 찾을 예정이다. 빌리의 형, 토니도 마찬가지이다. 엄마를 잃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가족을 꾸려나가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가족이라는 느낌이 드는 인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연의 성공은 우선 빌리에 달려있다.
8개월 정도 후면 한국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공연된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나.
존 핀 : 영국에서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도 과연 아이들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찾아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서든 그들을 찾아냈고 그들의 재능을 이끌어냈다. 한국 아이들의 재능에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주면 좋겠다. 그리고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자신이 가진 꿈을 위해 도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의 관객들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집을 떠나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