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돌파하는 음악, Like
취향이든 아니든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은 시작과 동시에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핀 조명 아래 선 반석의 랩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읊조리듯 시작된 반석의 분노는 화려한 기타 리프와 강한 비트의 드럼 사운드로 이어진다. 작품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오프닝에서 <재생불량소년>은 랩과 록을 차용한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내는 장르의 음악을 통해 이 작품이 직구로 승부할 것임을 암시하는 셈이다. 이후에도 음악은 각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상황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멜로디는 무균실에 입원한 반석의 맥박이자 살아있음의 신호가 되고, 샤우팅 창법은 치료 과정에서 겪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대변한다. 반복되는 치료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변화 없이 단조로운 음악으로 표현된다. 복싱의 기술을 응용한 가사와 그에 맞춘 멜로디가 생의 의지를 복싱을 통해 드러내는 두 소년을 그리기도 한다. 사실 복싱 국가대표였던 반석의 과거가 극 중반에 조각모음 하듯 들어오지만, 무균실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인물은 작품을 평이하게 한다.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재생불량성 빈혈과 백혈병 역시 극을 어둡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생불량소년>은 다양한 장르와 리듬의 음악으로 이 한계를 돌파한다. 멸균 처리된 음식만 먹을 수 있는 이들이 먹고 싶은 음식으로 라면을 꼽을 때, 단순히 “라면 먹고 싶다”는 대사보다 한없이 경쾌한 멜로디 위에서 수많은 라면 이름을 외치는 노래가 더 큰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연극과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새로운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표현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보편과 진부 사이, Dislike
<재생불량소년>은 제작을 맡은 프로듀서가 과거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은 후 무균실에서 투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따라서 발병과 치료, 완치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는 <재생불량소년>이 난치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의 연장선에 있게 한다. 결국 이 익숙함을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새로운 설정이거나 공감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작품이 선택하는 것은 후자다. <재생불량소년> 역시 주인공 반석의 우정에 집중한다. 함께 꿈을 키워왔지만 지금은 없는 오래된 친구, 무균실을 함께 쓰기 시작한 새로운 소년이 그 주인공들이다. ‘피’라는 소재는 이들을 가로막는 벽이자 새로운 삶을 위한 꿈으로 쓰이기도 하고, 사각의 링에서 끝까지 버텨내는 복싱을 인생에 대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재생불량소년>이 그려내는 서사가 보편과 진부 사이 어딘가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다는 것에 있다. 관객이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이들로부터 보편성을 얻기에는 공감을 위한 감정적 디테일이 약하다. 다양한 자료조사에도 불구하고 반석과 성균은 갑작스런 발병에 절망하거나 오랜 투병 끝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극단의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는 병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쉽게 예측 가능한 스테레오 타입에 가깝다. 물론 개개인의 경험은 소중하고, 그 어떤 극보다 더 극적인 현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실이 모두 극을 위한 좋은 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 모든 것을 이끄는 열쇠는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