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 공간을 재현하는 테크닉 (스테이지톡)

공간을 재현하는 테크닉, Like
극장에 들어서면 인간 모형의 거대한 석상이 먼저 눈에 띈다. 극이 시작되면 높이 7m를 훌쩍 넘는 콜로세움이 무대를 꽉 채운다. 많은 대극장 뮤지컬이 그러하듯 <벤허> 역시 거대한 세트로 웅장함을 뽐내지만, 영상과 세트의 착시를 이용해 좀 더 디테일한 공간감을 만든다. 콜로세움 세트의 이동에 더해진 영상은 마치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효과로 이어지고, 기울어진 세트와 거대한 돛의 영상은 뱃머리 안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배가 침몰한 후에는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들 위로 바다 속 영상을 투영해 구조의 현장을 구현해내고, 전차 경주 장면 역시 모형 말의 움직임과 영상을 이용해 슬로우모션 같은 효과도 준다. 소리의 울림을 이용해 유대인들이 마음의 안식을 얻는 지하 묘지 카타콤의 신비로움을 담아내고, 스모그가 깔린 무대는 순식간에 벤허와 퀸터스가 표류한 바다 위를 만든다. 이러한 테크닉과 연출은 <레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 같은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익히 봐온 것들이다. 하지만 벤허라는 한 인물이 다양한 공간에서 겪는 극적인 사건을 무대 위에 다 구현하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임은 확실하다.
원톱 뮤지컬의 한계, Dislike
<벤허>는 친구에게 배신당한 한 남자가 갖은 고초를 당한 후 그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뮤지컬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인 만큼 당연히 벤허에게 일어난 하나하나의 사건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친구의 배신, 가문의 몰락,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복수.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극적인 사건들 사이에서 벤허를 포함한 여러 인물들은 감정 변화의 과정보다는 극단의 상태만을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정확하게는 변화하는 감정을 보여줄 시간이 없다. 벤허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주느라 동분서주하고, 다른 인물들은 벤허가 겪을 사건과 감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총 서른여섯 명의 배우 중 세 명뿐인 여성 캐릭터 역시 모성만이 강조되는 어머니와 철부지 여동생, 남주인공에게 헌신하는 여주인공이라는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다. 벤허와 부딪히는 메셀라의 경우 친구를 외면할 정도의 잔혹성을 보이지만, 그 잔혹함에 대한 원인이나 목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악역으로서의 당위마저 흔들린다. 게다가 벤허에게는 친구를 향한 복수를 넘어 로마에 대항하는 유대인의 우두머리라는 롤까지 주어졌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벤허는 그렇게 영웅이 되고, 심지어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함으로써 그를 신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한 인물에게 주어진 롤이 많기도 하지만, <벤허>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족한 당위성, 비현실적인 설정과 같은 의문에 대한 답마저도 벤허가 답하기를 원한다. 원톱 뮤지컬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은 비단 <벤허>만의 것은 아니지만, 그 범위가 넓은 대신 감정이 얕아 더 버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